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다.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로 5남매가 다 함께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마치 끈으로 묶은 나무 다발이 끈이 풀려 흩어져 내리는 것처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니 형제들이 각각 제 살 길을 찾아 살아간다. 각자의 가정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 같아 맘이 편치 않다.
우리 5남매가 우애 없이 지내는 데는 큰 형과 둘째 형의 잘못이 크다. 큰 형은 최근까지도 자식과 동생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둘째 형은 나에게만 빼고 전화를 하면 욕부터 뱉는다. 나는 이런 큰 형과 둘째 형을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싫어했다. 큰 형 때문에 어머니는 빚에 허덕였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때 일이지만 큰 형 빚 때문에 어머니는 결국 집을 팔아서 빚잔치를 하셨다. 둘째 형은 술을 마시고 어머니 집에 와서 문이고 텔레비전이고 부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둘째 형보다 열두 살 어린 나는 당시에 아주 어렸기 때문에 그런 둘째 형이 무섭고 미웠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술 취한 둘째 형을 대할 때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런 형들에 대한 미움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사라졌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형들이었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더 이상 괴롭힐 수 없게 돼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 형들이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힌 적은 없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꼭 지켜드리고 싶었던 어머니를 괴롭히는 형들이 미웠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형들을 미워하지 않게 된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장례가 진행되면서 우리 5남매 부부와 우리의 자식들 총 26명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3일 동안 그 많은 인원이 함께 했던 적은 그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없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께서 5남매 각각을 다르게 사랑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큰 형을 많이 의지했다. 어머니는 서른 즈음부터 남편을 잃고 3남 1녀를 홀로 키우셨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다른 나까지 태어나서 5남매를 재산이 없이 키우셨다. 그러니 어머니께는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나는 그게 큰 형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큰 형은 남편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큰 형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악용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큰 형을 어머니는 끝까지 사랑하시고 보고 싶어 하셨다. 둘째 형이 나에게 어머니에 대해서 말할 때면, 어머니께서 자신에게만 쌍욕을 사용하셨다고 자랑한다. 둘째 형은 욕쟁이 할머니처럼 욕이 없이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욕을 사용한다. 그런 둘째 형의 욕에 누나와 셋째 형이 가장 큰 피해자다. 무슨 이유인지 나에게는 한 번도 욕을 써서 말한 적이 없다. 그런 형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때도 큰 형에 대한 쌍욕을 많이 사용했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는 화가 나셔서 둘째 형에게 욕을 하셨다. 둘째 형은 어머니에게 욕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아들이었다.
어머니에게 셋째 형은 천상 막내아들이었다. 내가 막내였지만 셋째 형이 훨씬 더 막내아들 같았다. 막내 형은 장난치며 어머니 가슴을 만지기도 했는데, 어머니는 징그럽다고 밀쳐내시면서도 웃으셨다. 그런 막내 형을 어머니는 가장 편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그래서 힘쓸 일만 생기면 막내 형을 불렀다. 그러면 막내 형은 "나만 자식이냐?"며 불평을 하면서도 어머니 집을 늘 챙겼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정서적으로 막내 형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 누나는 누가 보아도 친구 같은 유일한 자식이었다. 많은 어머니들이 딸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어머니도 그렇게 누나를 사랑했다. 어머니는 형들이나 나 때문에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많다. 자존심을 세우실 법도 하지만 어머니는 누나를 친구처럼 의지했다. 그리고 누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자신이 겪는 모든 문제를 숨김없이 풀어놓았다. 나는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누나에게 가장 미안해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어머니께서 동기간에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할 때 누나가 유일한 힘이었다.
형들과 누나가 어머니에게 각각 어떤 존재였을까을 생각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자식이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어머니는 내가 막내아들이었는데 그렇게 살갑게 대하지는 않으셨다. 그렇다고 욕을 하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나를 누나처럼 혹은 큰 형처럼 의지하지도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갈 때도 그 길이 힘들까 봐 눈물을 흘리셨지만 반대를 하시지는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오랜만에 공주 집에 갈 때면 꼭 김치찌개와 오이무침 그리고 갈치튀김을 해주셨다. 마치 항상 내가 오면 해주시려고 냉동실에 재료들을 준비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어머니에게 나는 유일한 자랑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남들 앞에서 내 자랑을 하시는 것을 종종 들었다. 심지어 결혼한 이후에도 어머니는 내가 달마다 용돈을 보낸다고 친한 동네 분에게 자랑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다니는 것도 자랑이었고, 목사가 된 것도 인도에서 사역을 하는 것도 자랑이었다. 하루는 고향 교회에서 내가 설교를 한다고 하니 다니지는 않으시는 교회에도 나와서 내 설교를 들으셨다. 어머니는 설교하는 막내아들 모습이 자랑스러우셨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5남매를 각각 다르게 사랑하셨고 다르게 대하셨다. 그리고 그 5남매도 어머니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큰 형과 둘째 형에 대한 미움이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