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둘째 그리고 막내

by 최정식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면서 자녀를 최소한 둘 낳기로 했다. 얼마나 더 낳을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둘은 낳아야겠다는 것에는 합의했다. 여기에 아내는 아들을 첫째로 낳은 후에 둘째가 딸이면 셋째까지 낳겠다고 다짐을 스스로 했단다. 딸이 둘째로 태어나고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셋째까지 낳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이 첫째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끊자 얼마 되지 않아 둘째 가졌고, 둘째를 낳고 역시나 모유수유를 끊자 얼마지 되지 않아 아내는 셋째를 임신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얼마나 되지 않아 계류유산이 되었다. 아내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아내는 임신중절수술 후에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어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의 셋째를 임신해서 건강하게 출산했다.

셋째를 임신하고 몸이 점점 무거워지면서 아내는 아이들 둘과 가사 일을 병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나는 19개월 밖에 되지 않은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강권했고, 결국 둘째는 19개월 조금 지나서부터 오빠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직 어린 둘째를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을 무척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셋째가 태어나면 저렇게 예쁜 둘째에게 아무래도 신경을 덜 쓰게 될 것에 대해서 미리부터 힘들어했다. 둘째는 실제로 엄마랑 떨어지는 것을 한 달 이상 힘들어했다. 나는 아침마다 교회에 출근하면서 교회 사무실 아래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둘째로 맡겼는데,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둘째는 매일 아침 한 시간 가까이를 울었다. 이렇게 둘째가 어린이집에 정착하고 몇 달이 되지 않아 막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아내는 막내가 태어난 직후로는 막내에게 온 신경을 썼다. 막내가 태어나면서 둘째는 내가 안고 다니게 되었고, 첫째는 혼자 씻고 준비하고 걸어 다니는 일에 익숙해졌다. 아내가 예쁜 둘째를 두고 셋째를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던 것은 그저 기우일 뿐이었다.

아빠인 나에게 막내는 뭔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낳는 것이 믿음인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래서 셋째를 낳고 더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 태어난 셋째를 보고 품에 안는 순간 무엇인가를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인도에 계신 친구의 아버지인 필립 목사님께 전화를 해서 셋째를 낳았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사역을 할 거면 그만 낳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들렸다. 결국 이 두 가지 이유로 우리는 자녀를 그만 낳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때마침 자녀가 네 명인 교회 집사님 내외분이 상의하고 남편 분이 나를 병원까지 데리고 가서 정관수술을 시켜주었다. 병원에 가는 길에 그분은 목사님 같은 훌륭한 분은 더 많은 자녀를 낳아야 하는데 자신들이 죄를 짓는 것 같다고까지 말씀하셨는데, 나는 웃으면서 우리 부부가 이미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기로 한 이야기를 해드렸다.

이렇게 태어난 막내는 모든 가족의 막내가 그런 것처럼 우리 가족에게 즐거움 그 자체였다. 둘째를 종종 시기하던 첫째도 셋째는 마냥 이뻐했다. 둘째는 자신도 아기였지만 자신보다 더 애기인 셋째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빠인 나는 첫째와 둘째가 자라는 모습을 본 터라서 셋째는 왠지 알아서 크는 것처럼 느꼈다. 엄마인 아내는 어떻게 셋을 키우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는데, 셋째가 주는 기쁨이 커서 그런지 내가 일하느라 육아를 돕지 못했는데도 넉넉히 세 아이들을 키워냈다. 얼마 전에 셋째인 막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막내는 우리 부부에게나 언니 오빠에게나 기쁨 그 자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세 아이들을 향한 우리 부부의 사랑도 각양각색이었다.

첫째를 향한 우리 사랑은 신뢰와 의지다. 우리 부부는 첫째에게서 듬직한 모습을 볼 때 든든함을 느낀다. 반면에 첫째가 자신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면 실망한다. 둘째를 향한 우리 사랑은 자랑과 소통이다. 우리도 팔푼이 부모라서 자식 자랑을 숨기지 못하는데 유독 둘째에 대한 자랑이 많다. 게다가 둘째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둘째의 심기에 늘 신경을 곤두 세운다. 막내를 향한 우리 사랑은 즐거움과 애틋함이다. 우리 부부 모두 명랑하고 쾌활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막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면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즐겁다. 막내는 언니 오빠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막내가 뮤지컬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반면에 우리 부부는 막내를 생각할 때마다 늘 애틋함이 있다. 나의 어머니도 막내인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가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도 잘 자라줘서 고맙지만 동시에 막내가 크는 과정 하나하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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