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인간

by 최정식

창세기 2장 18-25절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을 설명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 정의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사함을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요 3:16).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정리하셨다(마 22:37-39).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본분은 사랑이다. 인간은 사랑할 때 행복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존감을 갖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9)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짓기로 하셨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은 완전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할 대상이 없었으므로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를 만들어 주시기 전에 그에게 모두 짝이 있는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짓는 일의 결론은 아담에게는 돕는 배필이 없다는 것이다(창 2:20). 그러므로 사랑을 하려면 나에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그 대상이 없이는 더 이상 살 수도, 그리고 살 이유도 없다고 느낀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3)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채워서 여자를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든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다. 여기서 여기서 사랑이 가진 "신적 수동태"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내가 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수동적이 된다. 한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계획하고 쟁취하는 사랑은 소유하는 순간 매력을 잃는다(사무엘하 13장에 나오는 암논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사랑은 결코 나를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수많은 우연들 속에서,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오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신적 수동태"가 된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좋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헤어질 때도 능동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믿는 사람은 헤어질만한 수많은 이유들 속에서도 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는 하나님께서 이끌고 오신 사람을 "남자(이쉬)"에게서 취했기 때문에 "여자(이샤)"라고 이름 지었다. 이름은 존재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이름이 없으면 존재가 부정된다. 아담이 보여주는 사랑의 첫 번째 행위는 "또 다른 사람"을 "여자"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아담이 여자라고 부름으로써 그 여자의 존재가 만천하에 선포되었다. 사랑은 무엇인가? 상대방의 존재를 온 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그 아내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엡 5:25-29).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2:24-25)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부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한 몸을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하나님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0-22)


그런데 이 연합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거룩한 연합니다. 사랑은 내가 그 사람에게 맞추거나 그 사람이 내게 맞추는 연합이 아니다. 그것은 거룩과 진리로 서로가 연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인간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찾아온 사랑 앞에 우리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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