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힌디 공부?

by 최정식

대학에서 힌디(Hindi)를 공부했지만 인도에서 와서 살기에는 내 힌디 실력이 역부족이었다. 그토록 오래 공부한 영어도 그렇지 않냐고 변명하고 싶지만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는 게 사실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후회를 뒤로 하고 델리에서 힌디를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하니 여행하면서 토막 힌디를 쓰던 때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내가 힌디 교과서에서 배운 기본 단어들이(예를 들어, '친구, ' '선생님' 같은)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델리에서는 힌디 단어만이 아니라 우르드(Urdu) 단어(페르시아어 계통으로 파키스탄과 북인도에서 많이 쓰임)가 폭넓게 통용되고 있었고 여기에 영어 단어들까지도 합세한 모양새다. 델리처럼 북인도에 위치한 큰 도시들에서 이런 현상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힌디와 우르드는 일상 대화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문자에게 큰 차이가 난다. 힌디는 산스크리트((Sanskrit)에서 유래한 데바나가리(Devanagari)를 쓰지만 우르드는 아랍어의 문자를 쓴다. 그렇다 보니 문서와 그 문서에 쓰이는 어려운 단어들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인도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무슬림들을 파키스탄으로, 힌두들을 인도로 따로 독립시킴)을 하기 전까지 지금의 파키스탄과 델리를 중심으로 하는 북인도는 생활과 언어 그리고 종교에 있어서 한 문화권이었다. 그들은 우르드어와 힌디를 크게 구분하면서 살지 않았으니 문자만 다르지 말은 같았던 것이다. 여기에 이슬람 제국은 무굴제국이 오랜 기간 동안 델리-아그라-구왈리와르 지역을 수도로 삼고 있었고 그 때문에 무슬림(Muslim) 인구가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최근에 순수 힌디보다는 우르드 단어가 많이 통용되는 데는 인도 영화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인도 영화의 산업인 중심인 볼리우드(Bollywood, 미국의 Hollywood 이름을 따라 인도 봄베이 중심의 영화 산업을 일컫는 용어)에서 제작되는 인도 영화들에서 우르드어를 많이 사용한다. 인도에서 볼리우드 영화가 가진 파급력을 생각할 때, 영화에서 쓰이는 어휘들이 대중 어휘를 선도해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여기에 볼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들인 샤루 칸, 아미르 칸, 살만 칸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무슬림인데다가, 영향력 있는 시나리오 작가들도 무슬림이다 보니 우르드가 점점 그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은 당분간 막지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슬림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반면에 영어가 많이 쓰이는 데는 일차적으로 200년이나 지속된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국가로서 인도는 영어를 빼고는 운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영어는 인도에서 분리될 없는 언어가 되었다. 지금도 인도 전체에서 통용되는 "Inter-States" 언어가 영어이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특별히 교육의 영역에서 영어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는 명실상부 인도에서 교육언어이다. 상류층이야 영어가 이미 일상화되어 있고 하층민들은 괜찮은 직업을 갖고 신분상승을 하고자 영어로 배우는 학교를 선호한다. 실제로 영어는 인도에서 그 사람이 교육을 받았는가를 단숨에 알아보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다. 인도의 엘리트들이 영어 사용을 선호하는 이유에는 신분계급을 언어로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충분히 있다. 한 가지 예로 오토릭샤(Auto-Rikshaw)를 타고 가는 대학생들은 릭샤 운전사가 알아듣지 못하라고 영어로만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상류층은 더더욱 영어를 쓰고, 하위층은 상류층을 따라가고자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니 인도에서 영어의 존재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이 인도 전역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도심이 벗어나 인도의 시골로 들어가면 여전히 "나마스떼"나 "나마스까르"로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고 쓰레기통 같이 아주 쉬운 영어 단어도 모르는 젊은 친구도 많다. 그래서 순수 힌디를 배우고 싶다면 델리가 아니라 파뜨나(Patna)와 바라나시(Varanasi)와 같은 지방 도시를 가는 것이 낫다.

keyword
이전 16화9개 언어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