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방갈로에서 만난 인도인 목사는 자신이 9개 언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오랜 전에 만난 인도 친구도 자신이 7개 언어를 한다고 했었다. 인도의 시골에 갔을 때, 3중 통역을 경험한 적도 있다. 단일 언어만을 사용해서인지 여전히 영어 하나만으로도 버거워하는 우리로서야 한편 부러운 일이지만 다양한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 인도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싶다.
다양한 언어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다언어를 습득하는 것에 있어서는 유리하겠지만 반대로 불편한 점들도 많다. 역시나 방갈로에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그 가족은 내 친구 세대부터는 집안에서 영어만 쓰기로 했단다. 며느리들의 출신지가 각각 다르고 그에 따라 다음 세대 아이들이 배우는 모국어들도 달라질 수 있으니 집안의 최고 어른인 할머니가 가정의 언어를 영어로 통일시킨 것이다. 집안 모임에서도 영어만 쓰니 비슷한 언어를 쓰는 며느리들끼리 당 짓는 일도 없다고 한다.
내가 태권도를 가르치던 로렌스 학교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난다. 학교 교과 과정도 영어고 모든 공식적인 행사나 절차는 영어로 진행된다. 학생들끼리도 영어로만 대화를 한다. 그런데 선생님들 사이에는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북쪽에서 온 선생님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힌디 쓰기를 좋아하고 남쪽 출신의 선생님들은 타밀어나 말리얄람(께랄라 주의 언어)으로 의사소통을 즐겨한다. 당혹스러운 것은 해당 언어를 못 알아듣는 타 지역 선생님들이 있을 때도 '모르는 네가 바보'라는 식으로 자기들 언어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의사소통 이상의 교감을 낳기 때문인지 이 학교가 가진 지역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가정과 학교는 그나마 합의에 이르기가 수월하겠지만 나라 전체로는 불가능할 정도다. 인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도 국내에서 사람들의 이동과 이민이 가속되는 현상 속에서 이제는 인도 어느 곳에서든 인도 각 지역 출신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럴수록 영어 사용 빈도가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타밀나두 주처럼 보수적인 주는 힌디나 영어 사용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뉴델리 인근에 살다가 타밀 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영어 간판이 없다는 것이다. 시내버스는 물론 시외버스에도 타밀어만 쓰여 있고 이정표조차도 타밀어로만 쓰여 있어서 어디를 가려면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야만 한다. 이런 것이야 불편함 정도지만 공문서 조차도 현지어로만 적혀있으니 집 계약을 하거나 등기를 할 때는 반드시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인도 독립 초기부터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러 주들이 독립운동을 폈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래도록 같은 언어를 쓰는 동일 민족끼리 독립적 국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인도 중앙 정부로서는 허용범위를 쉽게 정할 수 없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권까지 연관되어 있으니 셈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로 나라 전체가 골치가 아팠던 것을 보면 다양한 언어로 대표되는 다민족 국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