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단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신임 선교사가 현지에 정착하는 기간을 2년으로 정한다. 이 기간 동안에 현지어를 습득하는 일에 전념할 것을 권하고 2년이 지났을 때는 현지어 능력이나 현지 적응 정도를 평가한다. 신임 선교사들은 선교본부와 상의해서 사역할 국가와 지역 혹은 민족을 정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선임 선교사가 이미 있는 곳에서 2년 간의 정착기를 보내며 지도받는 것을 이상적인 절차로 여긴다. 이러한 선교단체의 지도를 따라 우리 가정은 애당초 정착기를 보내려고 했던 남인도 방갈로가 아니라 북인도 델리 지역으로 정착지를 정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수도인 델리에서 정착하는 것은 한국 음식을 쉽게 공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빼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버거운 일이었다. 먼저는 인도에서 물가로 치면 2위가 되는 곳이니 초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집세는 당시 우리 돈으로 월 50만 원 즈음이었고, 자녀 교육비도 엄청 비싸서 그나마 저렴한 학교에 보내는 데도 불구하고 세 자녀에 매달 50만 원이 들었다. 우리만이 아니라 대체로 신임 선교사들은 후원되는 금액이 적은 편이니 경제적 압박이 컸다(당시 우리는 월 160-180만 원 정도 후원을 받았다). 다음으로는 델리라는 도시에서 겪는 일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외국인 등록을 하는데 한 달, 가스통을 받는 데 한 달 여기에 세계에서 제일 더운 도시니 이 도시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게다가 어찌나 거칠고 드센지... 결혼 전에 6개월 가까이 산 곳인 데다, 인도 친구들까지 있어서 여러 모로 수월했던 우리 부부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현지 적응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한 인도 선교단체의 대표인 친구가 나에게 왜 델리로 왔느냐고 물었다. 2년 동안 현지어 배우는 일에 집중하려면 델리가 아닌 북쪽 고산 지대인 무수리(Musoorie)에 가라는 것이다. 거기는 날씨도 좋고 힌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학교들도 많고 아이들이 다닐만한 좋은 학교들이 많다는 것이다. 거기서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힌디를 어느 정도 습득한 후에 델리 내려오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 말이 여러 모로 맞았다. 델리 쪽에 있는 선임 선교사분들은 각자의 사역이 있어서 우리를 돕고 싶어도 그리 쉽지 않았다. 선교사들도 생활 형편이 다르고 자녀들의 나이 때가 다양해서 무조건 선임 선교사분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넣기도 어려웠다. 힌디를 배우자니 주변에 힌디 학원을 찾을 수 없었고, 막상 영어가 어디서나 통용되니 힌디를 공부하고자 하는 노력을 배나 기울여야 했다.
신임 선교사가 초기 정착기를 보낼 때 어느 지역이나 도시를 선택할 것인가에 있어서 선임 선교사의 유무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선임 선교사가 있다는 것은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의외로 선임 선교사에 너무 의존적이 되거나 혹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기 정착지를 정하는 데 있어서 장차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인도는 각 지역별로 문화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북부와 남부 혹은 서부와 동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 주별로 다르고 심지어는 한 주 안에도 차이가 난다.
예를 들, 앞으로 라자스탄(Rajasthan)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싶다면 델리보다는 라자스탄 주의 수도인 자이뿌르(Jaipur)에서 초기 정착기를 보내는 것이 좋다. 라자스탄에서도 힌디가 많이 쓰이지만 영어나 우르드어를 섞어 쓰는 정도가 델리와 차이가 있고 힌디 자체에 있어서 억양도 좀 다를뿐더러 아무래도 해당 주의 언어인 라자스타니(Rajsthani)가 섞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라자스탄 사람들의 성품은 델리와 너무도 차이가 나니 델리보다는 자이뿌르에서 정착기를 보내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주 인구가 1억 5천만 명이 넘는 우따르 쁘라데쉬(Uttar Pradesh)에서 사역을 할 거라면 델리와 인접한 아그라(Agra)나 UP 주의 주 수도인 러끄나우(Lucknow)가 좋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힌디 벨트 지역의 내륙을 염두에 둔다면 바라나시(Varanasi)도 좋다.
두 번째로는 지역 외에도 사역 대상이에 따라 정착지를 정할 필요가 있다. 사역 대상이 대학생들이라면 대학들이 많은 곳이 좋을 것이다. 게다가 언어에 있어서도 힌디보다는 영어를 전략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좋다. 델리에 머무는 동안 델리대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했는데 놀랍게도 이들에게는 본인들의 모국어인 힌디보다도 영어가 더 친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중고 12년을 영어로, 영어책을 가지고 공부한다데가 대학에서도 영어로 공부하니 무엇인가를 학습하는 언어로는 영어가 더 친숙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힌디 성경을 공부하려는 생각은 일찍이 접었다. 사역 대상이 슬럼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면 힌디를 좀 더 잘해야 한다. 고급 힌디보다는 일상적인 힌디를 그들과 어울리며 터득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슬럼가 근처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힌디가 더 많이 쓰이는 곳이고 델리 근교인 아그라(Agra) 같은 곳에서 정착기를 보내면 좋을 것이다.
세 번째로 어떤 사역을 할 것이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사역 대상과도 연관이 밀접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좀 더 세분해서 보면 교회 개척을 할 것이냐 NGO를 통한 구제사역을 할 것이냐 혹은 학교 사역을 할 것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회 개척은 다시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경우 가능하면 인도 현지 교회를 출석할 수 있는 곳으로 정착지를 정하는 것이 좋다. 현지 교회가 전혀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후에 현지 교회를 알기 위해 1~2년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NGO를 통한 구제사역을 생각한다면 구제 대상이 되는 지역과 가까운 도시에서 정착기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학교 사역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지역을 택하는 것이 좋다. 학교의 학생이 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인도 학교에서 교사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