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로렌스 학교에서 근무할 때 아내에게 "우리 선교하는 것 맞아?"하고 물은 적이 있다. 인도에서는 보안상 태권도 선생님이지만 한국에서는 우리 스스로도 남들도 우리를 선교사로 불렀다. 그런데 어째 우리가 하는 일은 도무지 선교 같지 않아 보여서 아내에게 물은 것이다. 주중에는 인도 학생들에게 태권도와 도덕을 가르치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예배에 나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배 후에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물론 성경공부에 참석한 학생들 가운데는 믿지 않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때때로 주중에 크리스천 선생님들과 기도모임을 가졌다.
당시에 우리 선교방식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우리 선교는 너무 "목회적"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목회를 할 때, "선교적 목회"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이런 표현은 선교를 부수적으로 생각하는 교회들에게 선교를 하면 교회도 잘 된다는 의미에서 많이 회자되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교회가 태생적으로 선교적이니 목회 또한 선교를 중심가치로 두고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선교에 적극적인지 40년 이상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어쩌면 현장의 필요에는 뒤쳐진 표현일 수 있겠다 싶다.
반면에 "목회적 선교"는 어떨까?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너무 선교만 하다 보니 교회를 세우는 일에만 가치를 둔다. 그래서 교회 개척만 선교이고 나머지는 선교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있곤 했다. 게다가 선교를 위해서 현지 사역자들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들이 수단이 되어버리는 일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목회적 선교는 뭔가 균형 잡힌 종합적인 선교라는 이미지를 준다. 여기에 중동의 강성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선교가 많이 진전이 되어서 많은 나라에서 현지 교회도 많이 성장했다. 특히나 인도처럼 교회와 선교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는 선교사의 또 다른 역할론이 대두된다. 현지 교단이나 단체와 협력해서 사역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한 선배 선교사님이 나에게 동역을 제안하면서, '주님이 우리 세대에 오실 수도 있겠다!' 하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동의도 되지 않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 것 같았다. 주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고대해야 선교가 가능한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 사역에는 위급성이나 긴박성이 없어졌다. 인도 교회의 역사를 너무 존중해서일까? 아니면 우리의 사역이 다음 세대에 열매 맺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까? 이러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목회는 목회다워야 하고 선교는 선교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적인 목회!" "선교적인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을 하다 보면 균형이 요구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본질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진정한 균형은 목회를 선교로 만들거나 선교를 목회로 만드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목회는 목회 같고 선교는 선교 같을 때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