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인 1993년 6월에 선교 소명을 받으면서 나는 인도에 이어 중미에 대한 소명도 받았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저는 인도도 가고 중미도 갈 겁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도 그 소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 한 선배가 나에게 했던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네가 무슨 바울이냐? 한 지역이나 열심히 해!"
중미에 대한 소명 때문에 나는 대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이후에 부전공으로도 스페인어를 선택했다. 그리고 교양 과목을 선택하면서도 "중남미 사회와 문화"와 같은 과목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지금은 부전공이라고 밝히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스페인어 실력이 형편없어졌지만, 그래도 내 관심에서 중미와 스페인은 늘 떠나지 않는다. 인도에서 10년 사역을 마친 지금 한국에서 10년의 사역을 마친 후에는 중미로 갈 계획이다. 아직 어떤 나라로 갈지 정하지 않았지만 커피 전문점에서 과테말라나 코스타리카 커피를 우선 마셔본다. 내가 갈 그곳에서 왔단 말이지 하면서.
1995년에 한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주최하는 여름수련회를 참석한 때 일이다. 어느 날 밤 집회에서 강사분이 서쪽을 향해서 모두 서서 기도하게 했다. 그러면서 중국 선교사로 나갈 것을 도전했다. 나야 이미 마음속에 인도가 있었으니 인도도 서쪽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며 함께 서쪽을 향해 기도했다. 하지만 선교 전략이나 동원 차원에서 다수를 향해서 중국만을 도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1998년에 선교한국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당시 선택 강좌 시간에 인도와 중미 온두라스에 대한 지역 강좌를 각각 들었다. 온두라스에서 오신 선교사님은 "10/40 창"이라는 선교 전략 때문에 영적 추수 지역인 중미가 주요 선교 대상 지역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서 불평 섞인 열변을 토하셨다. 어쩌면 당시에 선교 전략에 밀려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선교사와 선교지가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은 선교학적으로도 지난 세기의 그러한 전략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느냐에 대한 재고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뭐든지 트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태도가 선교에도 부작용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전 세계 모든 교회가 모든 지역으로 가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략 이전에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가 가진 소명이자 기독교 초기부터 나타난 선교 형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후배가 출장 다니는 모습을 보면, 교회나 선교 단체가 가진 마인드가 대기업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 곤 한다. 그 후배는 천연자원을 전 세계적으로 거래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어느 때는 브라질에, 어느 때는 인도에 그리고 어느 때는 중동으로까지 출장을 간다. 천연자원이 있는 곳이라면, 돈이 되는 장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것이다.
인도에 머물며 칠레에서 온 선교사님을 만났고 국제학교 한 동료 교사는 베네수엘라에서 왔다. 나는 이 분들을 만날 때마다 짧은 스페인어를 다시 꺼내고는 했다. 선교학적으로도 이제 중남미 출신의 선교사들이 중국 출신의 선교사들과 함께 차세대 선교 주자로 대두되고 있다. 아니 현재로서도 세계 곳곳에 진출한 중남미 선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전략의 유무는 그 일의 성과에 많은 영향을 준다. 전략 자체가 효율성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적 자원과 재정이 들어가는 선교에 있어서도 전략은 필수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략이 소명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신념이다. 애당초 기독교는 효율성을 좇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 중미를 가 본 적도 없고, 가서 어떤 사역을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도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대감이 있다. 나를 인도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중미도 보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기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