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초이?

by 최정식

2011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뉴델리 근교에 살면서 인도 현지 교회를 출석했다. 대학생 때인 1999년에 왔을 때도 잠시 다닌 교회여서 익숙한 교회였다. 초기 정착기를 보내는 우리 입장에서는 사역할 수 있는 교회가 아니라 출석하면서 함께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교회를 찾은 것이다. 교회도 우리 가족의 출석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특히나 현지 목사님 내외분은 목회적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는 교회 밖의 교회 멤버가 생겨서인지 우리 부부를 조금은 의지하시기도 했지만 우리가 받은 위로와 도움은 훨씬 더 컸다. 자녀 학교, 집을 구하는 문제, 가스 문제 등 정착기에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기도하며 풀어갔다.


이 교회에서 나는 "브라더 초이"로 불렸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교회 사역을 하면서 전도사로, 강도사로 그리고 인도에 가기 직전에는 목사로 불려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호칭이 익숙지 않았다. 사실, 인도에서도 호칭은 중요하다. 교회에서도 단순한 파스터(Pastor)이냐 혹은 신학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레버런드(Reverend)를 따져서 부를 정도다. 이곳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레버런드이니 처음부터 나를 레버런드 라 불러 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브라더 초이"가 얼마나 더 성경적이고 아름다운 호칭인가? 직분에 따른 이름이 아니라 성도로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니 그것이 마땅하다 싶었다. 게다가 나는 이 교회에 목사로 청빙 되어 온 것이 아니라 한 성도로 동참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머리는 단번에 여기에 이르렀지만 가슴은 가끔씩 '그래도 내가 목산데....' 하긴 했다. 특히 나보다 20년 가까이 어린 대학생이 "초이!"라고 이름만 부를 때는 말이다. 어떨 때는 '왜 나는 엉클(Uncle)이라고도 안 불러?'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아저씨, "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이 썩 그리 좋지 않았는데 나이 어린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낫다 싶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나 자신도 한국 문화에서 탈문화 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것 같다. 현지 교회 목사님은 나를 여전히 "브라더 초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사실에 몇 달 후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설교를 시키셨다. 내가 설교를 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브라더 초이"라고 불렸고 이제는 그런 표현이 더 좋다. 반면에 남인도 특히 타밀나두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목회자를 존경하고 대접하는 교회 문화가 있다. 이 때문인지 그 지역 출신인 사모님은 교회 청년들에게 나를 파스터(Pastor)라고 부르라고 권하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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