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기억

by 최정식

2017년 9월 암투병 중인 어머니를 뵈러 한국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어머니와 우리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서 보여드릴 요양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찾아간 나는 노트북으로 여러 사진들을 보여드렸다. 헛살았다는 회환에 약간이라도 위로가 되리라.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2011년 인도에 막 들어왔을 때 찍은 사진들과 비디오들이 있었다. 그때 막내는 두 돌을 한 달도 채남기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 나는 그런 막내를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인도 어린이집에 보낸 이야기를 하곤 한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며 막내한테 "Toilet"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었다. 어린이집에서 떨어지기를 싫어하며 우는 막내, 그리고 그렇게 우는 막내 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있던 해언이와 해림이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난 참 모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 막내가 23개월 되기 전에 기저귀를 뗀 이야기와 우리와 함께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말을 곧 잘했다고 덧붙이곤 한다. 그런데 그 해의 비디오들을 보다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당시에 막내가 대여섯 살 정도 아이들처럼 말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제 나이 또래인 세 살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을 하려고 하는 데 막히기도 하고 짧게만 말하고...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 지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정도다.


내 기억은 이렇게 왜곡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막내 해린이가 옹알이를 할 때 늘 말대답을 해주는 내 모습에, 오빠 해언이는 "아빠는 해린이 말을 알아들어?"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건 말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들으니 막내의 말을 문자로 변환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사랑하는 맘으로 귀만이 아니라 눈빛과 살갗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들으면 된다.


이처럼 자녀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사랑으로 왜곡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말이다. 나는 나를 향한 어머니의 기억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늘 말 잘 듣고, 고생하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아들. 고생하는 엄마를 늘 헤아리는 아들. 그래서 그러신 지 동네에 계신 어머니 친구분들은 어머니께서 어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타국에서 사는 막내 아들네 걱정을 제일 많이 하신다고 전하셨다.


나는 죽음의 그림자에 우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드리며 맘껏 우시라 했다. 나도 함께 울면서 말이다. 그 눈물은 이 땅에서만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이 땅을 어떻게 기억할까? 사랑으로 우리 기억은 왜곡될 것이다. 아니 승화된다는 말이 나을 듯싶다. 그리고 나는 말을 이었다.


"엄마, 천국에는 눈물이 없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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