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병원에서는 암투병의 막바지인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퇴원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나는 혼자 한국으로 가서 어머니를 고향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드렸다. 그리고 다시 인도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가족들과 함께 인도에서 나올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어머니께서 몇 달 못 사실 거라는 의사 친구 말에 서두른 것이다.
2016년 7월에 암수술을 받고 잘 지내시다가 2017년 7월에 우리가 한국을 떠난 직후에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다시 입원하신 어머니께서는 더 이상 음식을 드실 수 없으셨다.. 그만큼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진 것이다.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실까 봐 영상 통화를 연결했는데 어머니께서는 아이들 얼굴을 보시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우리 아이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12월에 방학을 하면 들어가기로 이미 항공권을 끊어놨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겠다 싶다. 병원을 퇴원하기 앞서 만난 의사 친구도 그때까지도 쉽지 않을 거란다. 우선은 10월에 며칠 동안이라도 어머니를 뵙고 다시 12월 초에 다시 들어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는 어머니께 그때까지 사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죽음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은 이별이리라. 어머니는 병문안을 다녀가는 결혼을 앞둔 자매한테 좀 더 일찍 얼굴도 보고 했으면 좋았을 걸 하시며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셨다. 물 좀 시원하게 드시고 싶은데 그렇게 드실 수 없다고 하신다. 세상과 이별이 고통스러우신 것이다.
아이들을 화면으로 보시며 우시는 어머니 모습에서 나는 두려움을 읽었다. 더 이상 손주들을 보실 수 없으실까 봐. 아들과 며느리를 보기 전에 이별하실까 봐. 나는 이틀 후에 다시 인도로 가지만 아내랑 아이들은 한 주에 후에 다시 들어온다. 나는 이렇게라도 어머니에게 소망을 주고 싶었다. 이 소망이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사실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아니 그나마 이별의 고통을 줄이고 잠시라도 살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갖게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