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은 아들 해언이와 함께 출애굽기를 읽고 있다. 인도에 살다 보니 가물가물해가는 한글도 다시 익히고 인도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영어 실력도 끌어올릴 방법을 찾다가 선택한 방법이다. 출애굽기는 모세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여러 번 본 터라서 익숙한 내용인 데다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니 인명이나 지명을 제외하고는 어려운 단어들이 적다. 매일 10 여절 안팎의 내용을 한글로 읽고 영어로도 읽는다. 지난 두 주 가까운 기간 동안 3장까지 마쳤으니 하루에 족히 3시간 이상을 쓰는 것에 비하면 속도는 상당히 느리다.
한글 성경은 읽다가 막히는 단어들을 따로 적어 여러 번 쓰며 소리 내어서 읽게 하고, 영어 성경은 발음이 잘 안 되는 단어나 철자가 어려운 단어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들을 따로 적어 철자를 반복해 쓰면서 발음을 익혔다. 그래도 영어만을 쓰는 로렌스 학교에 와서 영어로 공부를 해서인지 문장 구조는 이미 알고 있어서 문법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전에는 영어로 읽은 것을 한국어로 번역을 시켜봤지만 아이한테 오히려 공부 스트레스만 가중되고 효과도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하듯 그저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을 병행해서 읽으면서 스스로 의미 파악을 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아이가 성경 한 장을 읽어내는 것을 기특한 마음에 녹음을 하고 싶어졌다. 녹음을 해서 성경을 읽으시는 외할머니한테 음성파일로 보내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핸드폰들이 좋아서 녹음 파일을 만드는 것이 쉽고 음질도 좋다. 이러다 든 생각이 가족 음성 성경을 만드는 것이다. 온 가족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음성으로 녹음해서 파일로 성경 책별로 정리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 가족 음성 성경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 개인에게는 자랄 때 읽은 자신의 목소리로 된 성경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것들이 모여 우리 가족에게는 신앙 유산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친인척들이나 절친들에게 성경 권별로 만들어 나눠준다면 서로의 음성을 통해 성경을 들을 수 있으니 신앙적으로 서로 도전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이전에 한국에서 교회 사역을 할 때도 했었다. 성경 쓰기를 격려하며 성도들이 필사한 성경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어 교회 유산을 갖는 것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 방식대로 핸드폰으로 음성 녹음만 하면 된다. 쓰는 것에도 많은 유익이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녹음해서 녹음 파일을 제출하게 하면 성도 수에 따라 한 주 안에 한 권 혹은 66 권 전체 성경 음성파일이 생길 것이다. 이것을 보아 파일로 제작하고 1년 동안 들으며 성경을 읽게 하면 매년 "교회 오디오 바이블" 이 새롭게 만들어져 교회 신앙유산이 될 것이고, 성도들이 성경을 읽게 하는 데도 큰 격려가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은 어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아들 해언이가 한글로 출애굽기 1장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8분이 넘었다. 떠듬떠듬 읽고 중간에 틀린 발음도 있지만 듣고 또 듣는 것이 지겹지 않고 8분도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 매일 밤마다 한 두 장씩 읽어주는 창세기를 내 목소리로 녹음했다. 녹음 중간에 둘째 해림이 말도 들어가 있고 딴짓하는 셋째 해린이 목소리도 들어가 있다. 혹시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연설을 할 때 누군가가 녹음했다면 이처럼 아이들 목소리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시작을 했으니 지속적으로 해서 끝을 보는 것이 일이겠지만 서두를 이유는 없다. 몇 년이 걸리면 어떤가? 오래 걸릴수록 우리 가족 오디오 바이블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읽어 머지않아 출애굽기와 창세기 "패밀리 오디오 바이블"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2013년 로렌스 학교에서 근무할 때 쓴 글이다. 당시 아들 해언이는 4학년으로 10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