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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식 Feb 25. 2022

성경과 영어

--- 이 글은 2007년에 한국에서 사역할 때 쓴 글이다 ---


들어가는 말

   지난 1년간 제가 성도들로부터 자주 받았던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떻게 성경을 봅니까?”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영어를 공부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전자야 제가 목사니까 당연한 질문이지만, 후자의 질문을 누군가에게 들으면 저는 대뜸 “아니, 목사한테 성경이 아니라 영어에 대해서 질문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간에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답변했던 적도 있고, 청년부에서 특강 한 적도 있지만 이참에 글로 한번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성경과 영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성경과 영어의 공통점

   “성경과 영어(외국어)” 사이에는 여러 모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두 대상에 대하여 겪는 문제점들도 비슷합니다. 우선 우리가 그토록 성경을 오래도록 보았는데도 여전히 성경이 어렵습니다. 영어도 그토록 공부를 하는데도 여전히 말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을 잘 알아도 성경 해석에는 큰 유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영어도 어휘와 문법을 잘 알지만 활용을 하지 못합니다. 결국, 영어를 그토록 오래 공부했는데도 실력이 없는 것처럼, 성경도 그토록 오래 가지고 다녔는데도 실력이 없습니다. 성경과 영어 둘 중에 어떤 문제가 더 심각하는가 하면, 자녀 교육면에서는 영어가 심각하겠지만, 인생에서 그리고 영원한 삶에서는 당연히 성경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둘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푸는 것이 다른 문제를 푸는 열쇠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둘 사이에는 여러 모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분명하고 핵심적인 공통점은 둘 모두 “언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언어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어색할 수도 있지만, 성경을 “진리의 언어”라고 말하면 한결 이해하기 수월할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어(眞理語)”입니다. 그리고 죄인인 우리에게는 외국어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냥 터득되지 않습니다. 더더욱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을 외국어로 비유할 때, 우리에게 모국어(母國語)는 인간의 언어일 것입니다. 죄로 인해 왜곡되고 부패된 언어입니다. 그렇다고 버려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성경의 언어로 거룩해져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는 성경이라는 외국어를 배우고 구사하는데 때때로 방해가 됩니다. 우리는 그 차이점도 발견하고 공통점도 발견하면서 성경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성경은 저절로 익혀지지 않아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를 한 동안 쓰지 않으면, 입이 굳어서 발음이 안 되며 고급한 어휘들을 잊어버려 기본적 어휘밖에 쓸 수 없는 것처럼 성경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늘 동일한 어휘에서 맴돕니다. 우리의 어휘 수가 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도 그곳에서 멈춰있다는 것입니다. 보다 엄격히 말해서는 퇴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고의 퇴보는 곧 우리 행동의 퇴보를 낳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신기해서 마음에 있는 것을 담아내지만, 곧 마음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합니다. 물론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창조도 하지만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창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답보 상태에 있거나 퇴보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언제 즈음 성경을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을까요? 저 자신도 이런 좌절감을 수시로 경험합니다. 




영어 못하는 나라, 성경 못하는 교회

   한 나라의 문화나 사상을 익히는 첩경이 바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언어를 배우다 보면 그 나라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상에 젖어들며, 마침내 그 나라 사람이 됩니다. 때때로, TV에서 한 외국인이 나와서 우리말을 구수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한국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인이 되기로 선택까지 합니다. 인종적으로는 한국 사람이지만 외국에서 자라나 우리말을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과 앞서 살펴본 사람 중에 누가 과연 한국 사람이겠습니까? 저는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경이라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외국과 같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나라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익히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온 나라가 영어에 미쳐서, 많은 재정과 시간을 쏟아 부는 데도 우리 영어 실력이 여전히 바닥인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안타까워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교회에도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회들이 교회에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모일 때마다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개개인은 사회에서 무능력한 크리스천으로 살기 일 수입니다. 영어의 어휘나 문법을 잘 아는 것처럼, 성경의 어휘와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리고 “은혜,” “진리,” “구속”과 같은 어려운 단어들도 잘 압니다. 그런데 말을 못 합니다. 그 성경대로 살지 못합니다. 


성경 실력의 도약을 위해

   사실, 공부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작정 공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간에 영어 공부에 대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모두들 방법론에 대한 책들입니다. 이러한 책들 중에 많은 책들은 얄팍한 상술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특별한 방법론이라도 있는 것처럼 광고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합니다. 다이어트에 대한 여러 책들이 나오지만 실제로 고전적인 원칙은 여전히 “적당히 먹고 운동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어공부에도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단은 자신들이 2000년 동안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낸 것처럼 떠들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떠들거나, 새롭게 무엇인가를 알아냈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말장난에 넘어가서 오늘도 이 책, 저 책 붙잡고 있으면 안 됩니다. 다이어트 책을 여러 권 구입하는 것보다 저녁밥 적게 먹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낫고, 영어 방법론 책 여러 권을 사서 읽는 것보다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 낫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대한 여러 잡다한 책들을 읽기보다는 성경 한 장을 읽는 것이 낫습니다. 물론 성경을 객관적이며 성경적으로 해석하는 데는 주석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읽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만 우리의 문제는 성경이 어렵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성경 자체를 읽기보다는 누군가가 해석한 책들만을 읽는 데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제안하는 방법론도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방법론을 듣기만 하고 말면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어 공부를 할 때, 듣기만 많이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늘 이어폰 꽂고 다니는 데 영어는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화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은 잘하는데, 늘 하는 말이 “어떻게 지냈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익히는 데는 정독, 다독, 통독, 연구, 암송, 묵상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때때로 그중에 한 가지 방법을 일정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말씀 일기를 하시는 분은 거기에서 만족하면 안 됩니다. 통독하시는 분도 거기서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연구도 하고 암송도 해야 되고, 그 성경 구절을 가지고 에세이도 써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학문적인 탐구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진전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유치원 신앙에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실제로 유치원에서 다 배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생각까지 거기에서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을 터득할 때는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운동하는 사람이 한 동작 한 동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성경을 공부할 때도 한 단어, 한 단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그간에 참 많이도 읽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도 수박 겉만 핥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평생 읽어야 할 책입니다. 내가 한 번 읽고 그칠 책도 아니고, 모른다고 낙점 맞는 책도 아닙니다. 서두를 것이 뭐 있습니까? 한 단어, 한 단어 정성껏 읽다 보면 알아가고 실력도 쌓이는 것입니다. 첫 술에 배 부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잘못된 마음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지금 보고 있는 부분에 마음을 두고 머물러야 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를 공부하던, 운동을 시작하던 함께 할 사람을 확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항상 박약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로 도와서 끝까지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겁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함께 공부할 사람 중에 내가 배울 사람과 내가 가르칠 사람이 있으면 더더욱 좋습니다.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있어야 고급화가 가능해지고, 내가 가르칠 사람이 있어야 숙련화가 가능합니다. 

   넷째로, 성경은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의 경우, 하루 한 시간씩 매일 같이 공부하는 것보다 일주일에 하루를 온종일 영어 하는 날로 정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 원리는 여타 다른 부분에도 적용됩니다. 청소년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밤이 새도록 하고 때론 몇 날 며칠을 게임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경을 그처럼 집중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말씀 일기를 매일 하는 것은 현상 유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도약을 가져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바는 일주일에 하루를 성경의 날로 정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주일이 그런 날입니다. 그날만큼만이라도 온종일 진리어(眞理語)인 성경을 사용해야 우리의 언어 감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일에 행사가 많아서 성경을 읽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토요일 오전 같은 때도 좋습니다. 3-4시간을 성경만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우리의 실력은 일취월장할 것입니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일 년에 2차례 정도 성경 주간을 정하면 좋습니다. 영어도 해외 연수를 떠납니다. 한국에서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해외 연수만큼의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외 연수는 물론 환경적으로 유리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영어만 하기 때문에 효과가 잘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성경 캠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혹은 2박 3일 휴가 기간에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성경 실력은 틀림없이 도약할 것입니다.


나오는 말

   제가 뭔가에 미쳐본 경험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과 영어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습 시간에 성경을 너무도 읽고 싶은데 선생님께 눈치가 보여서 선택한 방법이 영어 성경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 두 가지를 하는 일에는 결코 질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두 가지에 모두 능통한 것도 아닙니다. 인도를 다녀오면 늘 제 영어가 짧다는 생각을 하고, 설교를 하고 나면 늘 제 성경 실력이 형편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제 자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고,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말씀을 맡은 목사로서 성장해가는 일입니다. 저는 두 가지 일을 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성도들을 초청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이 즐거운 것처럼 목사가 성도에게 진리의 언어인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이 즐거운 일을 여러분께 도전합니다. 우리도 어서 빨리 성경으로 프리토킹(free-talking)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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