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치 인터넷 구매 기록이 포트폴리오가 되다.
나만의 뻘짓이, 내 개성이 되다.
'인터넷 구매 이력'
2014년부터 인터넷에서 구매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중고 거래 시, 언제 얼마에 샀는지를 빠르게 찾기 위해서였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빠지지 않고 기록했다.
1년, 2년... 귀찮았지만 계속했다. 이게 내 성격이다. 하기로 결정하면 의심하지 않고 소처럼 그냥 한다.
중고 거래할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대부분의 쇼핑몰이 1년 이전의 구매 이력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인터넷 구매 이력'은 몇 년이 지나니 강력해졌다. 그렇게 8년 치 구매 이력을 쌓아오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구매일자, 쇼핑몰, 가격, 상품명, 옵션(적립, 할인 등 추가 정보)으로 구성했다. 웹 기반 무료 노트 앱인 simplenote에 적고, 다음 해가 되면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옮긴다. 텍스트 분리 기능을 이용하여 공백을 처리해주면 데이터가 된다. 나름 시계열 데이터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면접이 화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직을 준비하던 나는 2차 면접을 한 시간 앞두고, 불현듯 이 데이터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만 해도 다양한 곳에서 구매했었지만, 2015~2016년 무렵부터 쿠팡, 네이버 쏠림 현상이 보이고 있었다. 경영진은 통계로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겠지만, 고객 한 명의 n년치 구매 이력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겠다는 생각이었다.
부가적으로 내가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데도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요즘은 워낙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중요시하니까. 게다가 2000행이 넘는 레코드를 보면 '주작' 의심도 없을 터.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은 보통, "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이다. 나는 이 질문에 준비한 내용을 화면 공유로 보여드리고 설명했다. 화상 면접이라 가능했던 제안이었다. 면접관들이 흥미로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위기가 좋았다. 결국 최종 합격했다.
입사 이후 면접관 중 한 분께서 사내 SNS에 면접(관) 후기를 남겨주셨다. 면접 후기는 많이 봤지만 면접관 후기는 신선했다. 내 생각보다 좋은 인상을 주었나 보다.
기록하는 습관에는 단점이 없다.
그리고 쌓일수록 그 힘이 커진다.
나는 이것을 체감하고 오늘도 삶을 기록하고 있다. 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