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근육을 키우자
책을 읽을수록 운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으로 힘, 근육, 심폐 지구력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도 정신을 훈련시킨다고 믿는다.
특히, 헬스에서는 점진적 과부하라는 개념이 있다. 중량을 계속 높이며 훈련해야 근육이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높은 중량, 새로운 자극을 통해 근육에 상처를 내고 회복하면서 근성장이 이뤄진다고 한다.
나는 정신 근육(?) 단련을 위해서, 고전을 읽어보기로 했다. 처음에 사 온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었다. 어려웠지만 길지 않아서 읽을만했다. 자신감이 높아진 나는 '쇼펜하우어 철학적 인생론'을 펼쳤지만, 절망하고 덮었다. 소크라테스는 세 번째 도전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모함 때문에 법정에 서서 변론을 하고 있다.
유명한 '무지의 지' 개념이다. 예전의 나는 몰랐지만, 최근에는 이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분명 과거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아졌을 텐데 점점 더 모르겠다. 더닝 크루거 효과의 결론은 그래도 우상향인데, 나는 우하향한 느낌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낫다고. 너무 아전인수일까ㅋㅋㅋ
사형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와 그를 탈옥시키기 위해 온 크리톤이 나눈 대화 편이다.
크리톤은 탈옥을 원하지 않는 소크라테스를 설득하기 위해 비용 갹출, 사람들의 평판, 자녀 교육 같은 현실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런 문제들이 원칙도 없이 쉽게 사형을 선고하거나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는 다수의 사람들과 같은 것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이성과 원칙을 따르는 사람은 정의, 명예, 선 외에는 다른 것을 고려하면 안 된다고 일축한다. 죽고 말고를 떠나서, 돈을 주고 탈옥하는 것은 자신에게나 도와준 사람에게나 모두 옳지 않기 때문에 거절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지켜본 인물이다. 그가 감옥에서 보았던 일과 들었던 대화를 에케크라테스에게 전해주는 내용이다.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화 같지 않다. 주제는 '영혼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는가?', '태어나기 이전과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존재하는가'이다. 아름다움이나 선함은 실체가 있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도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증이다. 이 부분은 태어나기 이전에 대한 내용보다 어렵기도 했고,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이성적인 시도들이 중세 이후 유럽을 융성하게 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장 감명 깊었던 대화편은 '향연'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에로스라는 신을 예찬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이방인 여성 예언자 디오티마와 나눈 대화를 들려준다. 디오티마는 플라톤이 만들어 낸 인물이라는 주석이 있었지만, 소크라테스의 태도와 그 내용이 놀라웠다. 아시아 출신의 이방인 여성에게 배움을 청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한 디오티마의 존재론과 깨달음에 대한 내용...
지식인들이 고대 그리스를 추앙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자유와 다양성이 있는 사회가 가진 힘을 느꼈다.
이 책은 어려웠다. 20%나 이해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만족스럽다.
무거운 중량으로 실패 지점까지 용쓰는 헬스인들 처럼, 뇌를 성장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해야겠다. '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