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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식PM Nov 06. 2022

내가 쿠팡플렉스를 하러 간 이유

현장에 답이 있다.

우문현답(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이라는 고사성어다. 기업에서 건배사로도 많이 쓰인다고 한다. 이 때는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의미란다. 건배사라니... 아재스럽지만, 뜻이 좋으니 넘어가자.


나는 컴퓨터로 일하는 서비스 기획자다. 하지만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은 공감한다. 이커머스의 현장은 바로 물류센터다.




요즘에야 고객 경험이니 라스트마일이니 물류 경쟁력으로 난리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판매자 배송이었다. 유통사들은 보통 물류를 취급하지 않고 중개만 했었다. 가끔 소규모 직매입이나 냉장/냉동 창고가 필요한 경우에만 직접 물류를 했다. 물론 그것마저도 외주업체를 활용했다. 한국은 택배도 1~2일만 기다리면 도착했기 때문에 직접 물류의 이점이 적기도 했다.


그런데 2014년 3월 쿠팡 로켓배송 이후 온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12시 이전 주문 시 익일 배송'. 그 비결은 무엇일까? '직매입 기반 직접 물류'다. 이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빠른 배송은 기본이고, 취소/반품/교환 등 배송클레임 과정에도 압도적인 고객 경험을 줄 수 있다. 다만 전국 곳곳에 물류센터를 짓고, 직원과 배송사원을 고용해야 한다. 직매입이므로 재고 관리에 부담도 있다. 쿠팡은 고객 경험 차별화를 위해 무수한 단점들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2015년 말, MBA 면접 질문 하나가 기억난다. "요즘 쿠팡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 될 것 같나요?"라는 교수님 질문에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지금은 손실이 커도, 고객들이 열광하는 서비스니 나중에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나와 달리, 교수님은 부정적인 의견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 문답은 쿠팡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대변한다. 극단적으로 반반.




본사 기획조정본부에 근무하던 때, 상무님께서 쿠팡플렉스에 대해 궁금해하신 적이 있다. 나는 곧장 플렉스 앱을 설치하고 금요일 밤 업무 신청을 했다. 


현장에 답이 있을 것이다.

캠프에 갔더니 나 같은 초보는 없었다. 5분가량의 교육 후, 박스들을 가져와서 QR 스캔을 하고 차에 실었다. 내가 모르는 동네라 동선을 어떻게 짜야할지 하나도 몰랐는데, 플렉스 앱이 차 안에 박스를 적재할 곳과 배송 순서까지 지정해줬다. 한두 집 배송하다 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의외로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 집이 많았는데, 그때는 캠프 카카오톡에 문의를 남기면 대체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그마저도 없으면 경비실에 요청했다. 무인택배함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참 헤매기도 했다. 새벽배송은 이런 변수들이 배송시간을 빼앗는 것 같다.


배송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아침 7시였다. 나는 이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이불속에서 기록했다.


쿠팡플렉스 체험 개요    

업무일시 : 2020-06-13(토) 00:30~07:00

물류센터 : OOO 캠프

배송지역 : OOO 인근

배송물량 : 총 30가구 44개 패키지

소요시간 : 분류/적재 1시간, 배송 3시간 소요

위탁수당 : 박스 1,150원, 비닐 950원 월 2회 정산(15일, 말일)

교육시간 : 앱 내 가이드 5분, 유튜브 10분, 현장 신입 교육 5분


업무 프로세스    

플렉스 앱으로 업무신청
- 날짜 및 배송 시간 선택 : 주간, 주간/야간, 심야, 새벽
- 희망 상품 개수(심야 기준) : 30~50, 50~75, 75~100, 100~150

캠프(물류센터) 도착 후 QR 센싱

라우트에서 컨테이너 가져오기

송장 센싱, 그룹별 분류, 적재

배송 시작

고객 지정 위치에 놓고 사진 촬영 후 배송 완료처리

반복 후 업무 종료


인상 깊었던     

2인 1조 전업 플렉서의 존재

입차 불가능 차종 (화물차, 다마스, 액티언 스포츠, 특정 번호판)

휴대폰으로 모든 업무 처리 가능

상세한 매뉴얼 제공

플렉서별 라우트번호와 컨테이너

배송그룹별 번호 (1~5그룹)

가구단위 지도 표시

공동현관 비밀번호 문제 발생시 캠프의 카카오톡 답변 속도

오배송주의 등 고객 특성 표시

배송완료 처리시 과거 n회분 사진 미리보기 제공 (오배송 방지)

카톡플친, LMS, 앱푸시 커뮤니케이션 : 주의사항 안내, 백업 물량 모집, 단가 인상


데이터 활용의 흔적들    

위탁배송반품회수의 대상은 '비효율 배송지'
- 시간당 배송 건수가 낮은 곳 : 인구밀도, 어려운 주차 환경, 계단
- 배송 물량이 일정적이지 않은 곳 : 가구수가 적은 단지, 빌라, 상업지

심야배송 이슈 해결 방식
- 공동현관 출입 불가시 캠프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문의 (비밀번호 족보)
- 비대면 배송완료 처리시 사진 촬영 필수 (집 앞, 무인택배함)

플렉서 스코어링
- 오배송, 파손, 매너, 지정위치 위반, 사진 미촬영 등 오류건 기반 점수화
- 40가구 이상 배송 완료시 조회 가능하며, 이를 기반으로 업무 물량 배정


보고서를 쓰기 위해 간 것은 아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대부분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진짜 체험을 하고 싶었다. 플렉스 앱이 현장과 어떻게 엮여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약 8시간 동안 30가구에 배송을 했다. 그 결과, 35000원 정도를 정산받았다. 값진 경험과 함께 용돈도 받았다.


호기심이 생기면 그냥 해보자
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기록하자 

이렇게 작은 경험들이 쌓이면 나를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게 해 준다.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대화 소재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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