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유학이 Plan A였다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는 Plan B도 필요했다. 어쨌든 영어 교육은 지속해야 했다. 영어유치원 다음 단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어느 날 아내는
대치동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를 신청했다.
영어유치원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경기도 외곽의 신도시다. 점점 좋아지고 있긴 했지만, 아이 수준에 맞춘 영어 교육은 어려웠다. 아무래도 언어다 보니 내 아이보다 뛰어난 친구들이 많은 곳이 낫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치동 영어 학원은 아주 다양하지만, 흔히들 BIG 3라 부르는 곳 있다. ILE, 피아이, 렉스킴. 처음에는 ILE를 보냈다.
2021년에도 코로나는 기승이었다. 다행히 학교는 보낼 수 있었지만, 집합 금지 때문에 학원은 원격 수업이 잦았다. 원격 수업은 제약이 많았지만, 그래도 집이 먼 우리 아이에게는 좋았다.
ILE는 미국 교과서로 수업했다. 한 챕터를 읽고 한 페이지마다 자기 생각을 적고, 교과서에서 요구하는 답변을 적었다. 이렇게 해 온 숙제를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아이는 새로운 수업 방식을 어려워했지만 금방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숙제량도 많고 주 2회 수업인지라 일주일 내내 숙제를 해야 했다.
나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미국 교과서 내용도 좋았고, 반 분위기도 좋았다. (줌 수업이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 생각이 달랐는지, ILE 레테(레벨 테스트) 광클에 이어, 굳이 렉스킴 레테 날짜까지 들고 왔다.
렉스킴 어학원은 여러모로 특이한 곳이었다. 테스트 난이도도 높았다. 시험도 보고 원장님과 면접도 해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로 시험을 보고 영어로 면접을 해야 한다니... 너무 갑작스러운 일정이라 우리는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덜컥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아이에게 따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어깨가 조금 으쓱했다.
항상 아내에게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야 한다', '아이의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 따위의 개똥철학을 설파하지만 나도 보통 사람인지라 쉽진 않다.
렉스킴 수업은 주 2회, 2.5시간씩이었다. 시간뿐만 아니라 수업일도 학부모가 선택할 수 없었다. 연간 수업일과 휴강일도 정해져 있었다. 모든 것은 주어진 대로 해야 했다ㅋㅋ 커리큘럼은 Writing, Speech, Reading, Grammar 네 가지였다. 교재가 있긴 했지만 따로 구할 수도 없었고, 대부분의 수업은 프린트물로 진행됐다. 규칙이 매우 엄격했고, 원장님이 학원 운영에 100% 관여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학원은 아니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대치동 사교육을 시작했다.
아내가 야심 차게 시작한 대치동 라이딩은 왕복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나중에는 다함영재원 수학 수업도 추가되어 주 3일은 대치동을 오갔다. 이 정도면 전입신고만 하지 않았지, 대치동 주민 아닌가?
자연스럽게 Plan B는 대치동 이사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