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방식을 바꾸고 얻은 것
이 글의 제목은, 아내가 추천해준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 썸네일에서 따왔다. 책은 대충 읽으면 안 된다.
독서의 중요성은 모두 알지만 실천은 어렵다. 큰맘 먹고 집어도 읽어나가기는 어렵다. 나도 그렇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를 위해, 자식 교육을 위해 읽어야 한다. 이번엔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예전 독서 방식은 간단했다. 하나를 잡고 꾸준히 읽었다. 완독 하면 뿌듯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며칠만 지나도 책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들이 증발한다.
나중에 다시 보고 싶어도 감명 깊었던 곳을 찾기가 어렵다.
써놓으니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을 당시에만 내 것이 된 것처럼(?) 착각했을 뿐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사람들 앞에서 "나 그 책 읽어 봤어. 괜찮더라" 정도로 과시할 순 있다. 과시형 독서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도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아깝다.
내가 독서 방법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다. 전 직장의 직속 상사이셨던 전무님 덕분이었다. 67년생이시니 나와는 20년 정도의 차이가 있는 대선배였다. 격의 없고 박학다식하셔서 대화가 잘 통했다. 새로운 툴도 젊은 친구들 이상으로 빨리 적응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전무님은 뭔가를 배우고 싶으면 항상 책을 구매하고 읽으셨다.
전무님이 읽으신 책은
형광펜 줄과 메모로 가득했고,
그곳마다 플래그가 꽂혀있었다.
별 것 아니지만 큰 차이였다. 우선 나는 이 방법을 모방해서 책을 적극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인상 깊은 대목은 형광펜으로 줄을 그었다. 저자와 생각이 다르거나, 연관된 생각이 나면 빈 공간에 낙서하듯 마구 적었다. 형광펜과 메모한 곳들을 플래그로 표시했다. 이렇게 독서 방법을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를 느꼈다.
그냥 읽을 때는 잠이 쏟아질 때가 많았다.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자괴감이 들었다. 분명히 글자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엔터를 못 치고 맴돌기만 했다. 그런데 책에 밑줄을 긋고 낙서를 시작하자 덜 졸렸다. 수업이나 회의 시간에 뭐라도 받아 적고 있으면 덜 졸린 것과 마찬가지다.
독서 방법을 바꿨다고 해서 기억력이 좋아지진 않는다. 다만 플래그로 표시했던 부분만 펼치고 밑줄과 메모만 확인하면 빠르게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인용할 일이 생긴다면 유용할 것이다. 예전 나의 생각을 돌이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플래그가 붙어있는 곳이 밑줄이나 메모가 있는 곳이니, 이 개수가 많을수록 나에게 좋은 책이다. 매우 직관적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성장했지만 아쉬움이 생겼다.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독서 노트를 만들었다. 처음엔 간단하게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책 제목, 구매일, 완독일, 평점, 회고를 기록했다. 플래그 수가 나만의 평가 지표라는 것을 깨닫고 페이지수 대비 플래그수 비율도 추가했다. 행이 쌓여가면서 뿌듯했다.
지금은 노션으로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조금 예쁘고 트렌디해 보이는 것 말고는 구글 스프레드시트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독서를 했다.
꽂혀있는 책들이 생명을 얻었다.
독서노트가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이것을 글로 써서 컨텐츠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독서 방법을 바꾸고 기록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