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 책을 잡기 어렵다. 책뿐만 아니라 글이 조금만 길어도 읽다가 금방 포기하게 된다. 내 얘기다.
아홉 살짜리 딸이 하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는 동감할 것이다.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읽기 힘든 책을 아이라고 읽고 싶겠는가?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TV... 우리 생활 속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항상 번민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모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부모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부터 우리 집 거실에는 TV가 없었다. 그리고 2020년, 완전히 TV 없는 삶을 선택했다. 그 전에는 TV로 유튜브도 보고, 야식과 함께 예능도 보고 평범하게 살았다. TV를 없앤 목적은 단순했다. 아이에게 '책 읽는 부모'를 연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심심한 것을 참지 못하는 존재 같다.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스마트폰이 갑자기 없어진다면? 상상만으로도 고약하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라디오와 TV는 100여 년,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10여 년 전 남짓이다. 이미 스마트폰은 내 몸의 일부이지만,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심심하면 뭔가를 읽거나 생각을 했다.
TV를 없앤 이유는
바로 그 '심심함'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
심심하면 뭐든 할 것을 찾게 된다. 아이와 놀이를 만들거나,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집은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그래도 우리 집은 달라져야만 했다. 그리고 TV 없는 삶에 익숙해졌다. 부모의 모범이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도 책을 좀 읽는 편이었다. 물론 장르소설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진짜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책 가격이 부담되다 보니, 내가 관심 있는 역사/과학 분야나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 위주로 샀었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니, 책 편식은 더 심해졌다. 다른 분야의 책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전 직장은 좋은 점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것은 '도서 구입 무제한' 복지였다. 보통 회사들은 업무 관련된 책만 구입할 수 있고, 회사 자산으로 관리한다. 그런데 전 직장은 법카로 책을 구입해도 직원들이 소유하게 해 주었다. 물론 규칙은 있었다.
첫 번째,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해야 한다.
두 번째, 구입한 책 이름이 전 직원에게 공유된다.
기타 : 만화책 안됨, 어린이 전집 등 직원 본인과 관계없는 책 안됨
주기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에 방문하게 됐다. 약속 시간을 기다릴 때나 시간 때워야 할 때 서점에 갔다. 원래는 쳐다보지도 않던 서가에서 책을 집고 읽었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니었던 책도 공짜이니 샀다. 손도 대지 않던 에세이를 읽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아쉽게도 지금 회사에는 이런 제도가 없어서 책에 내 돈을 쓰고 있지만 관성으로 사게 된다.
서점에 갈 때는 아이와 함께 간다. 내가 책을 읽으면, 아이도 따라 책을 읽었다. 아이를 위해 억지로 들고 보던 책 속에서 내가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아이가 책과 가깝게 지내길 원한다면,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1. 심심하게 만들어라.
2. 부모가 책을 읽어라.
방법은 간단하지만 실행은 다른 이야기이다. 이렇게 하지 못할 거라면 아이에게 책 읽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책을 읽지 않는데 아이가 어떻게 읽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