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독서노트에서 내가 별 다섯 개를 주게 될 줄이야. 이것은 유명세에 기인했다기보다는, 읽고 나서의 울림 때문이다.
중간 정도까지는 참담한 기분이었지만 무덤덤하게 읽었다. 나름 마킹과 메모까지 해가면서 말이지. 그런데 밤의 눈동자 편의 시위대의 행진 대목부터, 갑자기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가 머릿속에 맴돌며 눈물을 참기가 어려워졌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 눈물과 함께 읽었다. 심지어 한 달여 기간을 멈췄다가 읽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안타까움, 슬픔 정도의 애통한 감정만이 아니라, 억울함, 분노, 무력감 등을 포함한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발생했던 12.3 비상계엄과 시민들의 극복과도 연결되었다.
애필로그를 통해 이 책의 배경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어떻게 5.18을 접했는지,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도.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 검색을 해 보았다. 나무위키에서 한 번 더 눈물이 터졌는데, 아래 대목이다.
2024년 12월 7일, 노벨상 수상자로서 시상식 전에 하는 특집 강연(Nobel Lecture)을 했다. 강연 원문(한국어) 강연 내용 중,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기 위한 자료작업을 하며 한강 작가가 떠올렸다는 질문인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문구는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직후의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후 2024년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이 글귀가 인용되었고,[8] 2024년 12월 14일 대통령 2차 탄핵소추 당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탄핵안 제안설명을 하며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무장한 계엄군과 장갑차가 국회를 향해 밀고 들어오려 할 때, 소식을 듣고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나온 시민들이 이들을 비폭력으로 막아서는 상징적인 상징적인 장면을 마치 한강 작가의 질문이 현실에 재현된 것으로 이해한 국민들이 많았다. 정확히는 <소년이 온다>의 배경인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희생당한 광주 시민들이 '과거의 죽은 자'들로, 이들의 죽음으로 쓰여진 여러 교훈이 2024년 12월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 즉 '산 자' 들을 비상계엄의 위급한 상황에서 구한 것을 뜻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후 2024년 12월 남태령 시위[9]에서도 해당 구절을 떠올린 국민들이 많았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렇다. 80년 5월 광주의 트라우마는 24년 12월 산 자들을 살렸다.
담담한 언어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은 처음 받는다. 글은 재료일 뿐이고 독자들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것일까? 문학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한 방 맞은 듯하다.
나무위키 소년이 온다 주제에서는 명문장이라는 부분이 있다. 양심, 특별하게 잔인했던 군인들, 작가가 용산 망루가 불타는 것을 보며 '저건 광주잖아'라고 중얼거렸던 대목. 마침 내가 메모했던 곳들과 일치한다. 어느샌가 양심과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 사람들.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던 악의 평범성. 힘에 짓밟힌 사람들. 양심과 잔인함이라는 상반된 것들이 공존하는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지?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에도, 도청과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말.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대체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시 대부분의 시민군은 총이 있어도 군에게 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적이지만 우리는 같은 사람이니까. 24년에도 같았을 것이다.
작가는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보다 이 책을 더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전,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남았던 나의 의문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주호민 작가의 해설을 들어보려 했는데 잘 됐다.
오늘은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맥도날드에서 책을 덮고 남은 여운에 휴대폰으로 한 시간 넘게 이 글을 쓰며 방황하고 있다. 시끄러운 주변 때문에 잘 듣지도 않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였다. 검색을 하다 보니 작가와 이 곡의 인연이 보여서 놀랐다. 우연이겠지. 의미 부여하고 싶은 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