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11월 9일 화요일 아침 6시입니다. 교단 수기 공모전을 한다는 메일을 확인하고 올 1년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활용해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올해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속초 라이딩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8월 11일에 서울 강서구에서 속초까지 240km를 13시간 30분에 걸쳐 혼자 라이딩을 하고 왔는요, 사실 속초 라이딩을 하게 된 계기가 우리반 아이들 덕분에(때문에?)이기에 우리반 아이들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께요.
올해 저희 반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한 이야기를 꼽자면 ‘포기하지마’입니다. 3월 2일에 5학년 4반 학생들을 만났는데 첫 느낌이 마치 3학년 아이들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어리고 순수하고..여기까진 좋았는데 체력은 너무 떨어져 있었고 체격은 커져 있었죠. 비만에 가까운 아이들이 거의 50%였으니까요. 첫 주 체육 시간에 100m 달리기 완주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하는 것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어요. 그래서 다짐했죠. 올해 이 아이들이 운동을 잘하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운동을 좋아하게, 꾸준히 할 수 있게 운동 습관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운동을 습관화 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느껴야 하고, 운동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학생들이 단계적으로 자신의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인증제 형태의 활동을 도입했어요. ‘포기하지마 줄넘기’,‘포기하지마 셔틀런’,‘포기하지마 800m’에 참여하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기를 장려했어요. 그리고 5학년 체육 과정에 등장하는 ‘필드형 게임’을 할때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전(前)뉴욕 양키스 야구 선수인 요기 베라의 명언도 강조했죠. 긍정적인 생활 습관이 형성되려면 자기 자신과 타협하려는 마음을 접어놓고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1학기가 지났는데 2학기가 시작되면 우리 반 학생들에게 선생님도 방학 동안에 뭔가를 해냈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라떼는 말이야’가 무조건 별로인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에 문득,
‘우리 집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40km를 과연 자전거로 갈 수 있을까, 1년 전부터 자전거로 하루 44km 정도를 출퇴근 해오고 있었고 주말에 간혹 100km내외 라이딩을 하곤 했만 240km.. 대략 13시간 넘는 시간을 안장 위에서 페달을 돌려야 하는 것인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일단 동기유발이 되었으니 한번 실행해 보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 도전을 통해 세 가지를 얻을 수 있었으니 저에게 있어서 상당히 의미있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해줄 말이 생겨서 뿌듯했구요.
첫 번째, 호기심의 ‘위력’은 대단하다.
속초까지 자전거로 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기고 달성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되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어요. 경로를 알아보고 필요한 준비물을 검색하고 돌아오는 차편도 예약하는 등 여러 가지 준비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8월 11일의 라이딩이 계속 흥미롭고 편안하지만은 않았지요. 아침 4시 반에 집을 나서 라이딩을 시작했는데 10시 정도까지는 구름이 껴서 괜찮았지만 그 이후에는 해가 쨍쨍하게 떠올라서 저에게 자꾸 물을 요구했어요. 한강처럼 도처에 편의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물을 잔뜩 사서 속에 쏟아붓고 출발해도 다음 보급지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목이 마르고 몸이 열로 가득찼어요.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물을 계속 섭취했지만 화장실도 별로 안가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강원도로 향하는 길이 평평한 평지가 아니라서 툭하면 업힐이 등장하여 제 기운을 쏙쏙 빼먹어갔죠.
하지만 제가 스스로 집에서부터 속초까지 자전거타고 갈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하게 된 라이딩이라서 꼭 해내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억지로 끌고 갔다면 중간에 ‘못해요, 포기할게요’를 외치며 백기를 던졌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내 발로 하겠다고 한 것이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페달을 돌리며 안장 위에서 계속 생각했어요. 240km중 200km를 달려 해발 800m인 미시령 정상에서 바라본 속초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미시령 정상에서 속초 바다를 바라볼 때 어떤 기분이 들까? 하구요. 자꾸 생각하니 더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8월 햇볕의 위협에도, 강원도 산자락의 방해에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찡그리고 하면 벌칙, 웃으며 하면 운동’이라고 하잖아요.
두 번째, 때로는 ‘효율’보다는 ‘효과’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빨리빨리’문화는 어쩌면 이 시대를 지탱하는 시대 정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코로나19 때문에 언택트가 확산되면서 더욱 ‘빨리빨리’가 강조되는 것 같아요. 언택트 상황에서 줌(zoom)에서 간혹 발생하는 잠깐의 버퍼링도 우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느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뚫리고 KTX가 생기면서 서울에서 동해 바다를 보고 싶다면 마음만 먹으면 3시간 남짓 투자하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13시간 30분을 내 다리로 직접 페달을 돌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가 드디어 눈 앞에 동해 바다가 펼쳐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감동의 크기는 아마 후자가 훨씬 더 크지 않을까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일부러 이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가보니 그 과정의 축적이 주는 감동의 크기가 저를 반성하게 했어요. 그 동안 대략 짐작해보고 ‘굳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시켜먹어도 되는데 굳이 직접 요리를 해야 하나? 구글 검색해보면 되는데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하나? 쿨메신저 보면 되는데 굳이 동료 선생님들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눠야 하나? 등등 말이죠. 그런데 비효율적인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까요.
세 번째, 중요한 것은 내 시선의 ‘깊이’였다.
개인적으로 동해 바다를 좋아해서 차를 타고는 아마 10번 넘게 보러 갔을꺼에요.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가본 속초 여정은 차를 타고 갈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저에게 보여주고 들려 주고 느끼게 해주었어요. 특히 자전거 여행이 좋은 점은 내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한다는 점이에요. 자동차를 타고 가면 고속도로 라는 시공간을 뛰어 넘게 만들어버리는 블랙홀이 있잖아요. 그런데 자전거는 안장 위에 있는 사람을 초보 여행자의 시선으로 만들어버리는 매력이 있어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출퇴근 길이 그 전보다 더 즐거워졌지요. 짧은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거든요. 알랭 드 보통이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비행기를 10시간 타고 날아갔더라도 ‘일상의 내 자신’을 모두 챙겨갔다면 새로운 풍경에 오롯이 빠져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내 일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그 시선들의 ‘깊이’를 다르게 할 수 있다면 집 앞 골목에서도 하와이의 일몰을 볼 수 있으며 동네 커피 전문점에서도 헤밍웨이가 될 수 있죠. 혹시나 출근할 생각에 ‘한숨’이 쉬어지신다면 출근길에 대한 내 시선에 ‘변주’를 줘 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책인 ‘무엇이 수업에 몰입하게 하는가’에 보면 교사로서 가질 수 있는 3가지 열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경건하게 지켜보며 기쁨을 얻는 성직자로서의 열정, 그리고 교사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교과 및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때 얻는 열정, 마지막으로 교사의 개인적 취미와 여가 경험을 통해 얻은 가치를 학생들에게 전해줄 때 얻는 열정입니다. 서울 강서구에서 속초까지 13시간 반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라이딩을 하며 얻었던 인내, 끈기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며 저는 교사로서 개인적인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며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고 덤으로 학기초에 비해 운동 습관을 갖춰가는 학생들을 보며 성직자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소통 전문가 김창옥 님이 ‘나이 들어도 꼭 지켜야 할 것은 동안이 아니라 동심’이라고 하더군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곧 시작될 2022년을 힘차게 시작하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