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동이 있던 시즌, 어느 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처음보는 '물건'이 내 책상에 올려져있었다.
우유팩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인 직육면체 상자에 담겨져있는 물건이 무엇일까 상상했다. 그래도 그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적을 만들진 않았으니 폭탄을 아닐꺼야 생각하며 상자를 열었다.
일력이라...
익숙하기 그지없는 '달력'이란 낱말에서 음절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참 생소하고 낯설었다. 어린 시절 식당 같은 곳에 걸려 있었던 하루가 지나갈때마다 촥촥 찢어서 다음 날을 표시했던 그 장면을 떠올렸다.
그 어떤 꾸밈과 무늬는 사치인듯 평일에는 검정 숫자, 휴일은 빨강 숫자가 적혀있었던 그 커다랗던 일력. 그 당시는 토요일도 출근하고 등교하는 날이었기에 검정을 찢어 빨강을 만났을때 얼마나 반가웠을까.
후배에게 일력은 받았던 날이 2월 중순 정도였기에 1월 1일부터 한장씩 뜯기 시작했다. 뜯다 뜯다 잠깐 손 동작을 멈추게 하는 문구가 있으면 잠시 멍하니 보다가 또 뜯고 뜯었다. 1월 중순에 2주간 영국, 프랑스를 다녀왔던 그 날들도 결국 찢겨 나갔고 현실에 부딪혀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돌아오지 않는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어리석은 노인의 몫이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중에서-
지나간 추억을 뒤로하고 오늘 마주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는게 일력이 가진 큰 뜻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이 왕이면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오늘 하루를 바라보라고.
3월 12일 수요일. 피어오르는 말을 써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