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우리의 일상은 지켜져야 한다

by 정소정



아침 일곱 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졌다. 어제는 열 시에나 깼던가. 그제 역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는데, 오늘 이렇게 빨리 눈이 떠지니 횡재한 기분이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덟 시 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부랴부랴 옷을 입고 나왔는데 춥다. 정말 춥다. 요가복 위에 짧은 기장의 잠바를 입었는데 잠바 아래 엉덩이가 시리다. 이런 하체 시림은 겨울에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인데... 겨울이 와버린 것인가. 요며칠 새벽과 밤에는 겨울 옷을 입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찬 바람이 분다. 올 겨울 어쩌면 몇 년 만의 맹추위가 올 수도 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 기사 밑에는 ‘이딴 기사가 뜨는 걸 보니 올 겨울도 따뜻하겠군.’ 이라든지 ‘난방기 팔아 먹으려는 수작. 이젠 안 속는다.’ 같은 불신의 댓글들이 주르륵 붙어있었다. 그러나 남의 말을 잘 믿고, 또한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살짝 겁 먹은 게 사실이다. 이미 두껍고 따뜻한 잠바가 있지만, 기사를 보고는 조금 더 따뜻한 외투를 사고 싶어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샀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답해야겠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자제력을 조금만 잃으면 돈을 다 써버리고 만다. 자제력이 약한 쪽인 나는 버는 돈은 많지 않으면서 자꾸만 써버려서 말라가는 통장을 보며 후회와 다짐을 반복한다. 사실 몰라서 못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이렇게만 하면 조금 더 나아진다는 게 확실한데도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것 뿐이다.


오늘 8시 요가는 근 한 달만의 요가였다. 역시 한 달 만에 몸을 뻗으니 잘 되던 동작들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동작을 삼 초 이상 지속하는 것 역시 힘들어 중간중간 멈춰서 물을 마신다거나 땀을 닦는 등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며 선생님 눈치를 봐야했다. 요가를 하면 좋은 건 이렇게 꾸준히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몸이 달라지는 걸 바로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뭐든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할 때, 그 상태가 유지된다. 더 나아지려면 꾸준함,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멈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기. 그런데 그 상태를 위해서는 역시 꾸준함이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그런데 글이라든지, 사유에 해당되는 것은 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몸이 안 펴지는 건 정말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요가를 하면서 나 자신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요가를 못 했다는 건, 나의 경우엔 단순한 ‘게으름’의 징조가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쫓기고 있었다는 거다. 나는 주로 더 잘 써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요가조차 못 하고 시달리듯 글을 쓴다. 그런데 그렇게 쓰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매일의 요가, 매일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난 아주 쉽게 평정심을 잃고 만다. 내가 평정심을 잃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욕심을 부리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때에 내가 하는 일, 내가 쓰는 글이라는 건 힘이 빡! 들어가 있어서 예쁘지가 않다.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나마 자기가 생긴 만큼은 보일 텐데... 카메라 앞에서 긴장해서 어색하게 웃으면 더 자기답지 않은 사진이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를 할 때, 조금 더 잘 하고 싶으면 자신의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이 일이, 이 목표가 나를 파괴해도 좋을 만큼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든, 얼마나 사랑하는 일이든... 나의 일상과 나의 몸을 파괴하면서 지켜야 할만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요가가 되었든, 아침 체조가 되었든, 아니면 커피 한 잔과 책을 읽는 짧은 시간이 되었든, 기도나 명상이든... 자신의 일상의 기둥이 되는 뭔가를 가지면 참 좋다. 그걸 얼마나 잘 유지하고 있는가를 통해서 내가 지금 바로 서 있는지 체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성공이든 실패든 삶은 망가지지 않는다. 흔히들 실패하면 인생이 망가진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성공은 어쩌면 실패보다 더 위험하다. 성공으로 인생이 무너지기는 더 쉽다. 우린 실패 뿐 아니라, 어쩌면 불현듯 뜻하지 않게 찾아올지도 모를 성공이라는 위험한 손님마저 대비해야 한다. 뭐가 오든, 담담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건, 바로 일상이다. 더 정확히는 일상의 루틴. 프리랜서들에게 이게 어려운 건 일상의 루틴 자체가 없이 그 날 그 날을 다르게 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일 수록 더욱 자신만의 반복되는 일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프리랜서 십년 차인 나 역시 아직도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노력했고, 내일도 오늘처럼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선은 성공이다.



이전 08화숨 쉴 수 있을 만큼만 애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