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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정 Nov 26. 2020

인생 최고 몸무게


전염병이 창궐한지 벌써 일 년이다. 그리고 일 년 만에 나는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고 말았다. 모두가 살이 찌기 쉬운 계절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긴 한데 그래도 앞자리가 바뀐 몸무게가 좀 무섭긴 하다.


이건 내 몸무게가 아니야, 곧 빠질 거니까. 이건 그냥 지나가버릴…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약간 자신이 없기도 하고. 좀 당황스러운 건 살이 찌면 몸이 안 좋아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컨디션이나 혈색이 더 좋아진 것 같다는 사실이다. 뭐랄까. 힘이 생긴 기분이랄까. 나이를 먹으면 약간 살이 찐 게 마른 것보다는 면역력에 도움이 된다는 헬쓰 기사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 말이 맞는 건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나이에 걸맞게 살이 좀 찌고 보니 생각보다 몸이 이 몸무게를 즐기는 것 같다. 흐음… 곤란한데…


예전에는 몸무게 관리하는 게 정말 쉬웠었다. 빼야지 라고 생각하면 일이 주 안에 이미 빠져있었다.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인 만큼 빼는 것도 쉽다는 게 나의 자랑이었는데, 역시 그런 것도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는 것 같다. 지금은 빼야지 빼야지 생각하면서 계속 찌고 있을 뿐이다. 미모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던 시절에는 인터넷에 떠도는 ‘미용몸무게’ 따위를 보며 초조해하곤 했다. 당시 내 몸무게도 충분히 저체중이었는데 그것보다도 일이 키로 더 빼야하는 미용 몸무게를 의식했던 것이다. 그걸 기준으로 하면 절대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다. 세 끼는 커녕 두 끼만 먹어도 살이 찐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중반까지 나는 하루 한 끼 이상 안 먹었던 것 같다. 왜 그 따위 표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빈혈에 시달리게 하는 건지, 그런 기준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몸매에 신경을 쓰다보면 별별 게 다 신경 쓰인다.


목은 가는데 팔뚝이 좀 통통한 거 아닐까. 엉덩이가 너무 커보이지 않나


등등. 이미 충분히 마른 몸인데도 어느 구석, 어느 부분은 더 빼고 싶고 내 몸이 무슨 평가 대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쪼개고 또 쪼개서 점수를 매기게 된다. 지금은 의학적 표준 정도에 딱 맞거나 약간 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랐던 때보다 더 건강한 기분이긴 하다. 나이도 훨씬 많아졌는데도.  그렇긴 하지만 난 여전히 지금보다 최소 5키로는 덜 나가는 내 모습이 더 좋긴 하다. 그럼에도 지금 이 몸무게가 인생 최고점일 뿐 아니라 진짜 최고의 몸무게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뺄지 말지 갈팡질팡 중이다. 역시 자기긍정이란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뭐가 옳은지 알면서도 자꾸 표준이라는 남들이 만든 기준을 의식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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