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를 입양하기 전에 나에게는 ‘평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 평이가 세상을 떠나고 몇 개월을 고양이 없는 시간을 견디던 중 나도 모르게 네이버카페 ‘고양이라 다행이다’의 ‘입양게시판’만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암컷 성묘 러시안블루가 특이한 성격 때문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누군가 급히 입양을 해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은 흔들려서 얼굴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내 마음은 벌써 그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특이한 성격의 고양이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앨리가 살고있다는 신림동 어디쯤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조금 놀랐다. 열 마리가 넘는 품종묘들이 반지하 원룸에 모여있었고, 키가 180센치는 넘어보이는 젊은 남자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나를 맞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간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한데, 그 남자가 사용하는 싱글사이즈 침대에 십수 마리의 고양이들이 뭉쳐있는 것처럼 모여있었고 그들 사이에 회색 털에 초록색 눈을 가진 고양이 앨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얘가 앨린데, 성격이 진짜 특이해요.
하얀 터키쉬 앙고라를 지 새끼라 생각하는지 자꾸만 집착을 해서…
라고 말하며 앨리를 집어들었는데,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 남자는 직접 자신의 SUV를 몰아서 나와 앨리를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는데, 가는 내내 자신의 부모님들의 공무원연금 수령액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미 마흔이 넘은데다 수입마저 시원챦은 전업작기인 지금의 나라면 처음 보는 남자 부모님의 연금수령액을 상세히 들을 기회 따위는 없었겠지만, 당시 이십대에 공기업의 정직원이었던 -고양이를 키울 능력이 된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나의 직업과 연봉까지 밝힌 상태였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아주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두 분의 수령액을 합치면 무려 월 600만원이 넘는다는 거액의 연금수령액을 들으며 -당시 내 월급의 두 배는 되는 금액이었다!- 그의 단골 동물병원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그의 부모님 연봉 액수보다 더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암컷이라던 앨리는 중성화수술을 이미 한 숫컷이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일부로 속인 건 절대! 아니고요.
혹시… 수컷이라도 괜찮으시면 5만 원에 어떠세요?
라고 그 공무원 부부의 아들이 말하는 게 아닌가. 앨리는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이라며 15만원의 책임비를 달라고 해서 이미 줬는데, 생식능력을 상실한 수컷인 게 밝혀지자 5만원에 데려가라고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앨리가 암컷이든 수컷이든 상관이 없었다. 중성화가 안 된 암컷 러시안블루라고 알고 있던 그 때에는 데려가자마자 중성화수술부터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미 중성화가 된 수컷이라면 오히려 나에게는 더 좋았다. 마음 졸이며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상처가 잘 아물 때까지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아파하는 걸 보지 않아도 되니까. 평소 포커페이스에 절대 능하다고 할 수 없는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속마음 숨기고 “아, 네. 그러시죠.”라고 답했고, 그는 무척 기쁜 속마음을 약간 누런 치아와 함께 부모님 연금수령액처럼 속시원히 드러냈다. 그는 앨리와 나를 집까지 태워줬고 가는 동안 그 자신이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 중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남자라는 사실까지 나에게 상세히 알려줬지만, 그 차 안에서의 시간 이후로 우리는 그 어떤 시간도 공유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나에게 단돈 5만원만 받고 선물해준 수억 원 값어치의 시간이 내 곁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그 날, 수컷인 게 밝혀진 앨리는 수컷 중의 수컷이었다. 앨리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내가 벗어서 바닥에 던져놓은 옷이나 수건 따위를 돌돌 말아서 암컷처럼 만든 뒤 그 위에서 짝짓기(?)하는 시늉을 했다. 그것도 꽤나 오랫동안! 옷이나 수건을 제 때 치우지 않고 어질러놓은 나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이미 중성화를 한 숫컷이 그런 행동을 그렇게 자주,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앨리는 내가 발로 장난이라도 치려고 하면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꼭 내가 자신을 발로 걷어차려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게다가 앨리는 내가 만두를 먹을 때면 간장을 핥아먹으려고 했고, 온 집안의 벽지를 뜯으려고 했다. 앨리는 꽤 오랜 시간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었던 고양이가 아닐까? 나는 앨리의 습성을 보며 추측했다. 앨리는 보통 잘 생긴 고양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생긴 품종묘였으므로, 중성화수술을 하기 전에 펫샵 같은 곳에서 암컷을 임신시키는 수컷, 즉, 종묘로 쓰였던 건 아닐까? 간장을 먹는 걸 보면 사람이 먹는 간이 된 음식을 아무거나 얻어먹었던 것 같아 보였다. 누군가의 발길에 숱하게 차이면서.
나는 그런 앨리의 지난 시간을 생각하며 앨리가 어떤 말썽을 피워도 “잘 했다!”고 말해주며 꼭 끌어안아주었다. 내 곁에서 흐르는 이 잘 생긴 수컷의 시간에는 그 어떤 시련도, 폭력도 없어야 했으므로. 그리하여 이 앨리라는 고양이는 독보적으로 잘 생긴 나쁜 남자 스타일의 고양이로 으스댈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내가 발을 뻗어도 당연히 그건 자신의 배를 간지르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앨리와 함께 하는 내내 그 어떤 손님이 와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라고 말하며 앨리가 광범위하게 뜯어놓은 복구되지 않은 벽지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나는 단 한 순간도 그 벽지가 보기 싫었던 적은 없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공무원의 아들이 부모의 연금을 밝히듯 그렇게 명명백백하게 밝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