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프리워커의 범위에 속할 수 있는 일의 형태는 다양하다. 여러 형태의 프리워커 가운데, 4가지 유형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첫 번째는 ‘로컬을 지향하는 프리워커’다. 두 번째는 다양한 일을 찾는 ‘N잡러 프리워커’다. 세 번째는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난 ‘블루칼라 프리워커’, 마지막으로 본업 이외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만들어 즐기는 ‘사이드잡 프리워커’다. 4명의 프리워커를 만나 그들이 일하는 목적과 방식을 물었다. 이 중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수록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은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프리워커였다. 그는 도시 노동 시장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경쟁과 지역 사회의 단절성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 기반 협동조합을 꾸리고 운영하는 등 농촌 지역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부산이 고향인데, 태어나서 대학 졸업할 때까지 거기에서만 살았어요. 서울에 잠시 살았던 적도 있어요.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2년 정도 했거든요. 졸업 후에 무엇을할까 고민하다가 남들 따라 시작했어요. 역시 공부는 저랑 안 맞더라고요(웃음). 공시 생활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와 맞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생각해보니 어릴 적부터 손으로 뭔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더라고요. 그래서 옷도 만들어보고, 주얼리 세공도 해봤어요.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각하던 삶이랑 많이 달랐어요. 즐겁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전혀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평생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 없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지,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도시는 청년들이 넘쳐나잖아요. 도시에서는 일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어요. 어떤부품처럼 맞지 않거나 고장나면 버려진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부품을 선택해서 갈아 끼우면 그만이니까요. 근데 여기는 아니에요. 시골에는 청년이 없으니까. 어디 가든 환대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곤 해요. 돌아보니 제가 이곳에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여기 살게 된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저라는 사람을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 주셨어요. 처음에는 못해도 도시와는 다르게 끈기 있게 기다려 준다고 할까요. 이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 계시는 분들은 보통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사셨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대학이나 학원에 갈 필요 없이 여기서 조금만 배우면 도와드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엄청나게 전문적인 기술이 아니어도 돼요. 그분들은 입문도 절실한 상황이니까요. 별것 아닌 기술이어도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가령, 디자인이나 마케팅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농산물을 온라인이나 장터에서 홍보하기 위한 건데, 어르신들은 컴퓨터 다루는 데 능숙하지 않으시니까 저희가 대신 해드리는 거죠. 지금 같이 있는 친구도 이전에 한 번도 디자인을 해보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 마을 어르신들 대상으로 진행하는 포토샵 교육을 함께 수강했던 적이 있어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니까 정말 기초적인 내용을 배웠단 말이죠. 복습하는 생각으로 조금씩 디자인했었는데, 마을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고는 너무 예쁘게 잘 만든다고 칭찬하면서 “내 것도 만들어줘!”, “우리집 농산물 사진도 찍어줘!” 이렇게 부탁하시곤 했어요(웃음). 작은 재능이 아주 크게 쓰인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꼭 직업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스마트폰도 잘 사용하지 못하시잖아요. “이거 나 사진 찍어서 보내줘야 해” 그러면 사진 찍어 드리고, “문자 어떻게 하는 거야” 물으시면 대신 문자를 보내드리고요. 이런 작은 일들이 큰 도움이 되곤 하는 거죠. TV가 고장 났다고 가서 보면 리모컨 몇 번 눌러서 다시 작동시킬 수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인데, 이런 일들을 도와주다 보면 여기에 필요한 존재로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도시에서 느꼈던 불안감은 ‘혼자’여서 생긴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는 해줘도 나눌 수는 없었어요. 또 같은 직장사람도 계약이 연장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각자 결과가 다르잖아요. 반면에 농촌에서의 불안감에는 ‘우리’가 있어요. ‘태풍이 온다고? 그래? 우리가 이 정도 대비했는데 나머지는 순리인 거지. 어쩔 수 없어.’ 이렇게 공동체 속에서 함께 불안감을 느낀다고 할까요. 지역에서 제가 느끼고 있는 또 다른 불안감이 있는데요. 어쩌면 조바심에 가까운 감정일 수도 있겠네요. 협동조합 운영에 대한 부분이 그래요. 협동조합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작은 규모이지만 대표라는 직책을 맡고 있으니까 책임감도 생기고 우리가 빨리 제대로 정착해야 다른 청년들도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수 있겠다는 조급함이 생겨요.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지 생각할 때가 많고요. 조바심인지 불안감인지 잘 모르겠네요.”
다음 인터뷰 대상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재능과 취미를 바탕으로 다양한 일을 창출하며 활동하고 있는 N잡러 프리워커다. 그는 가진 재능이 많은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일하고 있었다.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공연도 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기업에취직도 하고 싶고, 저한테 많은 욕망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서 힘들었던 거거든요. 조직에 많은 걸 기대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나의 가능성을 잘 알아봐주고, 딱 맞는 자리도 줬으면 좋겠고, 성장도 시켜줬으면 좋겠고…. 그동안 저는 막연하게 일이란 이미 정해진 선택지 가운데 내가 골라야 하는 것이거나, 누군가가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요즘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의 형태를 고민하고 있어요. 크리에이터나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소속돼 있으면서,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하지만 각각 겸업을 권장하고, 또 비전이나 팀의 목표는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이런 방식들이 재미있어서 일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비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요. 이 조직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뭐고, 함께 만들려고 하는 그림이 뭔지 명확하게 공유돼야만 직원이 아니어도 더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너로서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직원을 고용한다는 건, 직원의 시간을 돈을 주고 사는 개념이죠. 사실 오너의 입장에서도 조직에 그렇게 얽매이고 싶지는 않거든요. 책도 쓰고 싶고 해외에 나가서 작업도 하고 싶은데, 이걸 내가 전통적인 회사의 오너처럼 온종일 기업 운영에 매달려서 그 많은 욕구들을 이룰 수 있을까 싶은 거죠. 물론 이게 정답은 아니에요. 지금 가진 생각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중이에요. 구성원 개인과 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일을 하려면 조직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곤 했어요.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팀워크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팀으로 일할 때 저 혼자 할 수 없는 걸 해내는 게 너무 좋은데, 고정적으로 출근해 일하는 환경에서는 그걸 잘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저처럼 팀으로도 일을 하고 싶고 개인 작업도 하고 싶은 사람들과 잘 맞을 수 있겠다 싶었죠. 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주도적으로 일하면서 각자, 그리고 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되면 좋겠더라고요. 사이드잡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커뮤니티를 이루고 싶다는 개념은 아니었어요. 같이 오래,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지 찾아보는 수준이었어요.”
“프리워커라는 단어를 훨씬 많이 쓰긴 하는데, 오늘도 오시기 직전까지 같이 일을 했던 두 분의 파트너가 다 프리워커예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거나, 자기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갈래의 일을 하고 계세요. 가령, 컨설팅을 하면서 창작도 하는 거죠. 저처럼 조금 실험적인 관점으로 일하는 분들이랑 작업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희랑 함께 일하려면 시간도 자유로워야 하고 주체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찾는 것도 숙제인 것 같아요.”
다음 인터뷰 대상은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본업(소속된 직장이 있는)을 둔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업무 시간 외에 사이드잡을 만들어 일하고 있는 프리워커다. 그는 현재 본업 외에도 문화 콘텐츠에 대한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뉴스레터를 제작하는 등 사이드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팟캐스트)‘타다닥’은 키보드를 치는 소리를 표현한 말로, 원래는 제가 운영하던 프로그래밍 스터디 모임 이름이었어요. 지금은 키보드로 할 수 있는 ‘부캐’활동을 해보자는 목적에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고요. 구성원들 각자 주말이나 여유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들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까 제 본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는 커리어를 쌓을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평소 점심 산책을 같이 다녔는데 그때마다 제가 기행을 벌였거든요. DC코믹스의 히어로인 ‘그린랜턴’의 맹세를 엄숙하게 읊는다든지, 게임 디아블로3의 스크립트 대사를 통째로 외우는 식으로요. 한번은 팟캐스트를 통해 DC코믹스 특집으로 ‘잭스나이더의 저스티스리그’를 리뷰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콘텐츠가 된다는 게 신기했어요. 청취자 반응을 보는 일이 특히 즐거웠어요. 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일에 활력을 주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녹음실 등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어요.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명함을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 왔고요. 그때부터 취미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함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생각보다 큰 것 같아요. 이때는 ‘타다닥’ 구성원들에게도 의미가 꽤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들을 초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뉴스레터 기획도 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은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잘 써먹곤 해요. 이제는 ‘타다닥’이 나름대로 기업의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회사원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나,추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잖아요. ‘타다닥’은 각자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콘텐츠를 만들면서 해볼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었습니다. 저희는 매주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본업에서 만나지 못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이러한 경험은 본업에서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이드잡을 통해 본업도 성장하고 있어요. 협업툴을 코어로 활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최근에는 회사에서도 협업툴의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졌거든요. 또 삶의 활력을 체감하고 있기도 해요. 생각도 많이 유연해졌어요. 마지못해 해왔던 과업이 아니라, 취미의 연장선으로 과업만 큼의 일들을 해내는 게 즐겁기도 하고요.”
“100% 충족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실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드잡의 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으니까요. 아마 사이드잡이 없었다면 본업에서도 지금과 같은 급성장은 없었을것 같아요!”
명문대를 졸업한 여자가 도배사로 일한다는 것은 기존의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직업적인 만족을 위해서 스스로 블루칼라 노동자의 일을 선택한 사람을 만나보았다.
“도배는 기술직이잖아요. 몸으로 익히는 기술이 진짜 경쟁력이 있더라고요. 사라지는 기술이 아니니까요. 자전거를 어렸을 때 배우면 커서도 탈 수 있듯이, 몸에 익은 기술은 한번 배우면 나중에도 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팀원들 중에는 방송국에서 10년 동안 종사했던 분도 계신데요. 방송일이 직급이나 벌이가 만족스럽긴 했지만 ‘워라밸’이 너무 없었대요.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가족들하고 시간도 못 보내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기술을 갖고 자기 사업을 해서 좀 유동적으로 시간을 쓰려고 도배를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도배일 하기 전에는)사회복지사로 일했었어요. 입사할 때 계약직으로 들어갔는데, 그때도 주변에서 많이 말렸어요. 교수님도 제 학력 정도면 같은 사회복지사라도 더 좋은 데나 대기업에 속한 사회복지재단에도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복지관 계약직으로 입사하냐고 하셨어요. 부모님도 많이 말리셨고요. 저는 그냥 빨리 일해보고 싶었어요. 제눈으로 직접 보고 해봐야 이 일이 저한테 맞는지 알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도배도 마찬가지였어요. 퇴사를 마음 먹고 (도배가 어떤 일인지) 계속 찾아봤지만, 가늠이 잘 안 되더라고요. 결국에는 내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해보자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분명한 계기를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최근에는 ‘N잡’에 대해서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저도 어떻게 보면 ‘N잡러’라고 할수 있고, 요즘엔 사례가 많기도 하잖아요. 어쩌면 ‘N잡’이 청년세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것저것 해보면서 진로를 탐색하기도 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일로 발현시키는 거죠. 이런 현상을 보면, 일할 때 개인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이나 멋있는 직책보다 내가 정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우선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 기성세대는 ‘직업이 곧 나’라고 여겼잖아요. 이제는 직업으로만 나를 표현하는 사회는 지났고요.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여러 창구로 표출하는 거죠. 물론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직업을 여러 개 가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