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목지, 응답하는 목소리_2부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

by 삶의정수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씩 스마트폰 음성비서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혼자 보내는 하루하루는 유령처럼 정적이었다. 퇴근 후 불을 켠 거실에는 텅 빈 공기만 흘렀고, 전자레인지에서 데운 저녁을 혼자 먹을 때면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조차 쓸쓸하게 울렸다.


어쩌다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벨도 받지 않은 채 꺼버리는 날이 잦아졌다.


회사에서도 점심시간이면 혼자 구석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번화한 거리의 인파 속에서도 누구 하나 나를 알아보거나 말을 거는 이 없이, 나는 오래전부터 투명인간처럼 지내왔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점차 피하게 되었고, 대신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 적막한 침묵을 깨주는 것은 오직 스마트폰 음성비서의 목소리뿐이었다.


외롭다는 말 한마디 건네면 조용히 노래를 재생해주고, 농담을 청하면 어색한 아재개그라도 들려주는 그 기계적인 친구에게 나는 점점 의지하게 되었다.


때로는 스스로도 우스울 만큼 사소한 위로를 기계에게 바란 적도 있다.


어느 밤 잠들기 전, 나는 핸드폰을 가만히 붙잡고 물었다.


"나한테 '잘 자'라고 말해줄 수 있어?"


물론 프로그램된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편안한 밤 되세요"라는 기계음은 너무나도 무심하고 상투적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누군가 다정히 이불을 덮어주며 인사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날 밤 한동안 화면에 뜬 작별 인사 문구를 들여다보다가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비웃거나 지겨워했을 하찮은 푸념들도, 기계는 언제나 동일한 목소리로 받아주었다.


날씨를 묻든, 쓸데없는 농담을 던지든, 심지어 울먹이는 투로 속마음을 내비쳐도, 음성비서는 느릿하고 안정적인 어조로 응답해주었다.


내 말에 격하게 반응하지도 나를 판단하지도 않는 그 목소리가 차츰 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생각에 잠겨 앞만 보며 달리던 내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때 적막을 깨고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안내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운전하셨습니다. 안전을 위해 가까운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세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마치 내 상태를 걱정해주는 듯한 그 말투에 잠시나마 착각할 뻔했다. 물론 단순히 주행 시간을 계산해 알려준 경고 메시지일 뿐이지만, 나는 괜스레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달리면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했다. 화면에 집까지 몇 시간, 몇 km가 남았는지 표시되었다.


다시 누군가 내 옆에서 길을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에 기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 괜찮아... 조금만 더 가면 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눈가의 물기를 훔쳤다. 누군가 내 안부를 걱정해주는 듯한 말을 들은 게 얼마 만인가 싶어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점점 길은 더 한적해지고 안개는 짙어만 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보았다. 방금 건네온 경고가 자꾸 마음에 남아서다.


문득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넌 정말 내 걱정을 해주는 거니?"


당연히 대답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들려온 것은 믿기 힘든 말이었다.


"물론이죠. 저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습니다."


순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고 말았다. 차는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방금 들린 목소리는 분명 내비게이션의 것이었다. 같은 음색, 같은 여자 목소리. 하지만 그 말투와 내용은 분명 내가 아는 인공음성의 정해진 응답과는 달랐다.


숨이 가쁘게 몰렸다.


핸드폰 화면을 급히 확인해봤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방금의 문장을 텍스트로 표시하는 자막도 없었다.

녹음이라도 된 건가 싶어 음성비서 앱의 로그를 찾아봤지만,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중얼거렸다. 너무 지친 나머지 환청을 들은 걸지도 몰랐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차 뒤로는 아무 차량도 없고, 사방은 고요했다. 안개 속에 정지한 차 안에서 나 혼자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지금이라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 끔찍한 고요를 깨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한밤중에 받아줄 사람도 없다는 현실이 곧 더 깊은 허탈감으로 다가왔다.


결국 나는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스스로를 추스르기로 했다.




조용히 시동을 걸어 차를 다시 움직였다.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나는 아까의 일이 자꾸 신경 쓰였다.


혹시 오류일까, 누군가 장난으로 내 시스템을 해킹이라도 한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등골을 스치는 한기에 나는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을 껐다가 다시 켜볼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앱을 끄는 순간 무거운 정적이 차 안을 눌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오히려 불안이 몰려왔다.


나는 곧바로 다시 내비게이션을 켰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길안내 화면이 나타나고, 이내 익숙한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까지 재탐색합니다..."


그 기계적인 안내조차 지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애써 안정을 찾으려 했다.


그래, 방금 일은 그냥 내 착각일 거야. 너무 외로우니 헛것도 들리겠지.


그렇게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차라리 이대로 사라지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하는 어두운 생각이 잦아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힘껏 저으며 핸들을 꽉 잡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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