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목지, 응답하는 목소리_본래괴담

by 삶의정수

짙은 안개가 산골 도로를 삼켜버렸다.


지희는 야근을 마치고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늦어진 퇴근길에 올랐다. 시내 도로가 공사로 막혀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지름길을 택했지만, 이런 깊은 산속 길일 줄은 몰랐다.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헤드라이트를 켜도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희는 속도를 시속 20킬로미터까지 줄이고 내비게이션 음성에만 의존해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500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기계적인 음성이 차 안에 울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출발할 때는 포장도로였는데, 언제부턴가 비포장 산길로 바뀌어 있었다. 차 한 대 겨우 지날 만한 좁은 길이었다.


'이게 정말 지름길이야?'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이미 한참을 들어온 상황에서 되돌아가기도 애매했다. 지희는 더욱 속도를 줄이며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랐다.


"좌회전입니다."


안내에 따라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헤드라이트가 비춘 몇 미터 앞에서 길이 뚝 끊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까만 물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수지였다.


한 발만 더 나갔으면 차째로 물에 빠질 뻔했다.



지희는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후진 기어를 넣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함뿐이었다. 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때 내비게이션이 다시 울렸다.


"직진입니다."


지희는 화면을 확인했다. 분명히 저수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재탐색합니다. 직진입니다."


"말도 안 돼!"


지희는 비명을 지르며 내비게이션 전원을 껐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조심스럽게 차를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다행히 갈림길이 보였고, 거기서 큰 길로 나갈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익숙한 가로등이 보이는 도로에 도착했다. 지희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혼자 있기가 무서워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모임은 잘 다녀왔어?"


어머니는 평소처럼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잘 갔다 왔지. 덕정이 엄마가 저녁 한턱 내더라. 덕정이가 첫 월급 탔다고 용돈을 줬다면서 말이야."


순간 지희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엄마... 무슨 소리야? 덕정이 엄마는 3년 전에 돌아가셨잖아."


통화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머니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괜찮아?"


대답 대신 수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희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의 이름이 화면에 떴다.


"여보세요?"


하지만 들려온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왜 네비 대로 안 갔어?"


낮고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지희는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공포에 질린 지희는 가속페달을 밟고 집으로 향했다.


빨리 집에 가서 이 악몽 같은 하루를 끝내고 싶었다. 아까의 일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수지, 이상한 내비게이션, 그리고 전화 속 섬뜩한 목소리.


그때 맞은편에서 불빛이 다가왔다.


상향등이었다. 너무 밝아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쾅!


거대한 충격과 함께 지희의 의식이 사라졌다.




삐— 삐— 삐—

규칙적인 기계음에 지희가 눈을 떴다.


하얀 천장, 소독약 냄새. 병원이었다. 온몸이 아팠고 여기저기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가 들어왔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병실 구석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등을 돌리고 있었다.


"저... 물 좀 주실 수 있어요?"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지희는 이상함을 느끼고 자세히 보려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발을 봤다.


맨발이었다. 그런데 발가락부터 발목까지 살점이 문드러져 있었다. 검은 물이 발밑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지희의 심장이 멎을 듯했다.


그때 그 사람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창백한 얼굴에 두 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꼬리에는 기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왜 죽었는지 알려줄까?"


바로 그 목소리였다. 전화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지희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자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내가 왜 죽었는지... 알려줄까?"



그 후로 지희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병실에서,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어디든 그 여자가 나타났다.


항상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내가 왜 죽었는지 알려줄까?"


의사들은 사고 후유증이라고 했다. 환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희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걸.


저수지에서 무언가가 따라온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무언가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밤마다 들려오는 그 목소리와 함께, 지희의 긴 악몽은 계속되었다.


"내가 왜 죽었는지... 알려줄까?"

수, 일 연재
이전 05화살목지, 응답하는 목소리_ㅇ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