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연 - 5

좁은 세상

by 융 Jung

외국으로의 출장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 일이다. 직원에게 비즈니스 클래스를 허락하지 않는 회사에 근무하는 나에게 유럽으로의 출장은 여정을 계획하는 단계부터가 고통이다.


출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예정되어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가 정해진 것은 2월 말이었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하기 위한 회사의 조건은 이랬다. 비행시간은 7시간 이상이어야 하며, 반드시 직항이 아닌 "저렴한 경유 항공"을 이용해야 하고, 항공권은 출국일 기준 2개월 전에 구매가 이루어져야 했다. 위의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에만 허락이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한 일이다. 급하게, 다시 말해 2개월 미만의 시간을 남겨두고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나머지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이코노미 플러스 또는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권장한다는 내용 역시나 꼼꼼하게 쓰여있는 사규를 읽고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렴한 경유 항공편"의 비즈니스석은 저렴하지 않은 이코노미석과 별 차이도 없고, 이코노미 플러스나 프리미엄 이코노미는 찾아보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좌석의 공간상 딱히 큰 차이도 없다.

"이런 조건은 사실상 비즈니스석은 타지 말라는 말 같아요."

-라는 나의 말에 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던 인사팀의 동료에게 괜스레 미안하기까지 했다. 조금이라도 출장을 편하게 가려고 알아본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결국 나는 모든 항공편을 이코노미석으로 구매했다. 과거에 몸담았던 직장이 잠깐이나마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일요일 비행기. 출장의 시작이 주말이다. 월요일 오후부터 각국에서 일하는 팀원들이 독일 후숨에 모여야 하기 때문에 극동아시아에 근무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침 11시 10분 비행기로 나는 인천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에어프랑스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나는 언제 어디서나 잘 자는 초능력을 지녔기에 무릎이 앞 좌석에 닿지 않도록 꼿꼿한 자세로 14시간이 넘도록 숙면을 취했다. 두 번의 기내식과 간식을 챙겨 먹고도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다시 잠을 청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현지 시각 오후 6시 45분이었고, 독일 함부르크로 향하는 항공편의 출발이 오후 8시 50분이었으므로 나름 괜찮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비행기의 출발은 한 시간 넘게 지연됐고, 함부르크 공항에는 밤 11시 40분에 도착했다. 호텔을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자정이 지나있었다. 자취방에서 출발한 지 거의 스무 시간 만에 호텔에 도착한 셈이다.


비행기에서 그렇게 긴 잠을 자고서도 부족했던지 피로가 쏟아지듯 몰려왔다. 쓰러져 잠들고 싶었지만 나는 휴가가 아닌 출장을 온 입장이고, 또한 해가 뜨면 시작될 일정이 신경 쓰였다. 짐을 풀어 내일 입을 옷을 옷걸이에 걸고, 입고 입던 땀내 나는 옷가지를 지퍼백에 넣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일정은 빠듯했다. 독일 후숨에 새로 지은 공장을 방문했다가, 프랑스 폰탈리에와 라뮤어에 위치한 공장 두 곳을 방문한 다음, 마지막으로 리옹의 셍 보네 드뮤흐에 위치한 본사까지의 여정이었다. 꼬박 사흘 만에 이루어진 일정이었다.


일정의 마지막 날, 나는 리옹역 근처를 거닐다가 낯익은 인도인을 만났다. 딱 두 번 만난 적이 있는 인물로, 과거 인도지사에서 일하다가 퇴직을 한 해 앞둔 그가 프랑스로 이민을 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를 알아본 것도 용하지만, 그가 나를 알아본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프랑스 본사의 도움으로 리옹역 근처의 아파트에 묵고 있다는 그는 선뜻 나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의 아내로부터 프랑스의 식재료로 만든 전통 인도식 식사를 대접받았다.


세상은, 정말로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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