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잘 자고 일어났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가벼운 기분이 몸에 스르르 번져갔다.
언제부턴가 새벽 3~4시면 잠이 깨 더 이상 잠들지 못하는 때가 많아졌다. 오후 7시면 약효가 떨어져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늘 8시경에 잠자리를 편다. 그러나 바로 잠들지 못하고 1시간 이상을 뒤척인다. 그렇게 몇 시간 간격으로 깨다 보면 잠이 다 달아난 새벽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도 그 정도면 나쁜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최근 몇 달 동안 불면을 겪으며 알았다. 초저녁에 2~3시간 정도 자면 각성되어 잠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날짜도 바뀌지 않은 10시, 11시에 각성될 경우에는 참으로 막막하다.
약이 없으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버리는 파킨슨 환자로서 약 없이 깨어 있는 밤은 몇 배로 고통스럽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묵은 옷장을 정리하거나, 읽다 접어둔 책을 펼쳐 들거나, 지금의 심경을 연필 들어 공책에 빼곡히 써 보는 평범한 일상은 파킨슨 환자가 오래전 잃어버린 호사다. 굳은 몸의 감각과 통증, 편하지 않은 호흡을 애써 외면하고 신경을 안정시켜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희망이다.
파킨슨 환자의 불면은 다양한 요인들이 만나는 결과물이다. 통증을 동반한 몸의 불편이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자율신경의 불안정함이 잠들지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 불안, 우울, 잦은 소변, 약물 등이 잠을 빼앗아간다. 수면 부족은 약물 반응을 무너뜨리고 병을 쉽게 악화시키며, 그 결과 다시 불면 요인으로 이어진다.
나는 몇 달 동안 불면을 겪으며 처음에는 어떻게 하든지 자야겠다는 강박적인 마음 상태였다. 수면을 도와주는 마그네슘, 가바, 멜라토닌, 티아닌과 같은 영양제를 먹었다. 몸이 이완되고 바닥에 가라앉듯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곧 잠 속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그러나 꼭 자야 한다는 머릿속 생각은 나를 이 현실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끝내 깨어 있는 머리는 몸까지 다시 현실로 불러들이려 했다.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반수면 상태로 밤을 보냈다.
잠은 이완이고, 이곳을 놓음으로써 다른 곳으로 건너가는 거다. 그런데 나는 자야 한다는 강박적인 목표를 잡고 더 강한 긴장 속에 스스로 밤새 불침번을 선다. 그 긴장은 나 스스로 잠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불면이 아니라 정확히 불신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조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파킨슨 환자이니 잃어버린 조건을 더욱 많이 맞추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햇볕을 보며 많이 걸으려고 한다. 가능하면 오후에 15분 반신욕을 한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저녁에 밝은 전등을 켜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마그네슘, 티아닌, 멜라토닌을 먹는다. 여기까지가 조건을 맞추는 거다.
그 이후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그냥 기다린다. 잘 자는 것은 당연함이 아니라 선물처럼 특별하고 감사한 것이다. 또, 오늘 못 잔 것은 내일의 잠을 좀 더 쉽게 오도록 하는 끌어당김이다.
잠을 잘 자기 위한 조건을 맞추어 가면서 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 나를 돕는 태도를 배운다. 내 것이 풍성해진다. 한편 내 것 아닌 것은 놓으려는 마음으로 방향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