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더 이상 하기 어렵게 되었다. 운전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 파킨슨병을 얻은 것은 13년 전이다. 속도를 40킬로 이상 내기 무서웠고, 좌로 굽은 곡선 구간을 지나려 하면 두려움으로 굳었으며, 내 차선을 침범하여 옆차가 자꾸 들어올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다.
약 두 달의 유예기간을 가졌다. 동네에서만 타야지 하고. 그러다 ‘아, 이젠 그만해야 하는구나’ 딱 판단이 서는 때가 있었다. 아파트 마당에 서 있는 차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차는 언니네로 보내기로 했다. 내가 타는 동안 한 번도 손걸레로 닦아주지 않았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차의 구석구석을 닦아 주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나에게 매여 있지 말고, 너로서 활발하게 달리며 살기를 바란다’
생활의 불편은 부차적이다. 차를 놓는 것은 병이 깊어감을 의미하고 앞으로도 내가 하나둘 놓아가야 할 것을 상징한다. 두려움이 어찌 없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 여정에 들어서면 결국은 통과해 나갈 것이다. 13년 동안 파킨슨 환자로 겪어온 것들도 적지 않다. 병을 점점 더 깊이, 다른 차원에서 경험하고 있다.
외출할 때 지하철, 버스를 이용한다. 헤드셋으로 여유롭게 음악을 듣는다. 봄이 오는 차창 밖의 풍경을 찬찬히 본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왕복 30분을 걸어야 하는데, 봄볕 속에 걷는 것은 오히려 반갑다. 의식을 몸에 두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려고 하며 바른 자세로 걷는다.
다시 운전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갔다. 이렇게 돌고 도는 거겠지. 모두들 갓난아이가 되어 떠나온 별나라로 돌아갈 거다. 그때쯤에는 ‘백만 송이 꽃’처럼 피워낸 사랑을 가슴에 안고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