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볼을 아시나요?

by 느티나무

오늘도 땅콩볼을 챙긴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 작은 공 두 개가 짧은 연결 지점을 두고 붙은 것이 꼭 땅콩을 닮았다. 땅콩볼은 마사지볼로도 쓰이지만, 나는 흉추 신전운동에 쓴다. 흉추에 잘 위치하도록 두고 누워 있으면 처음에는 많이 배기지만, 곧 흉추가 펴지고 그 확장된 공간 덕에 호흡이 편해진다. 왜곡된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오랜 세월 스스로 나를 통제하고, 위축시킨 것을 속죄하고 보상받으려는 듯이 나는 땅콩볼의 힘을 빌어 15분 동안은 과장되게 가슴을 편다.



땅콩볼 흉추펴기 운동은 재활운동센터의 숙제다. 이제 한 달 남짓 다닌 재활운동센터와 나는 여러 연결고리를 거쳐 이어졌다. 우연이 겹친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내가 만나야 할 진실을 직면하고, 그걸 책임지게 하는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은 별다른 이유 없는(?) 어깨 통증이었다. MRI까지 찍었다.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진단 후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 증상은 씻은 듯이 사라졌지만 주사와 약을 끊으니 다시 시작됐다. 예전에 오십견이 왔을 때 물리치료로 쉽게 나은 기억을 떠올렸다. 곧 물리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병원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물리치료 첫날 치료사는 내 어깨 상태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여 영상에 담았다. 파킨슨 환자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진들은 참 봐주기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봐주는 마음을 낼 수 있었다. 병의 흔적이 역력한 내 몸을 드러내기 싫어 병원 가기를 지독히도 싫어했는데 이제 좀 내려갔나 싶은 마음에 오히려 스스로 대견한 마음도 약간 들었다.



어깨 주변 근육을 풀고 몇 가지 운동을 하자 통증이 바로 사라졌다. 신기했다. 굳은 근육 풀기와 약한 근육 강화가 근골격계 통증치료의 기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치료사가 가르쳐 주는 동작을 열심히 했다.

세 번째 치료 때 치료사는 파킨슨 재활운동을 본격적으로 받아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현재 어깨가 아픈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고, 몸 전체의 균형과 근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통증은 어깨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 번져갈 수 있다고 했다. 나도 재활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적지 않은 비용과 믿을 수 있는 운동센터를 찾는 막연함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무거움으로 밀어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필요에 대한 인식과 치료사의 진심에 대한 수용으로 나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재활운동센터는 지하철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먼 곳이었다.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재활선생님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차를 끓여주고, 내 옷을 옷걸이에 걸어주고, 저만치 두었던 내 신발을 직접 가져다주었다. 나의 상태를 살펴 필요한 것을 ‘한다는 것 없이’ 채워주었다.

몸 상태를 이것저것 평가했다. 재활 선생님은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많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내 굽은 등을 보고는 크게 놀라워했다. “예전에 공부를 참 많이 하셨나 봐요.” 하는 말에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몸에 내가 살아온 것이 다 담겨 있고 그게 읽히는 것 같았다.



가슴은 자기 자신의 자리다. 가슴을 닫는다는 것은 자신을 닫는 것이고, 가슴을 움츠린다는 것은 자신을 위축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닫고, 나를 위축시키며 살아왔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 하지 않았지만.

세상의 기준에 더해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그것으로 나를 혹독하게 평가하고 판단했다. 그 기준대로 되고 싶으면 조금씩 나아가면 되었지만, 단박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은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나를 향한 거친 마음은 그대로 외부로 겨누어졌다. 외부 사람들의 작은 말, 행동 하나도 내 기준으로 해석하고 오해하면서 마음을 닫았다. 닫힌 마음으로는 떳떳할 수 없고, 그 떳떳할 수 없음이 등을 굽게 하고 가슴을 움츠리게 했다.



병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통해 내 마음을 보고, 남은 생에서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방향 잡아가고 있다. 혹독한 병을 통해 기다리고, 관찰하고, 수용하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병이 나를 너무도 자주 배반한다고 느끼지만, 병은 그냥 저 갈 길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게 될까...

운동으로 파킨슨병을 고칠 수는 없다. 다만, 뇌의 우회경로를 만들어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삶에서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참 많이도 그냥 보냈다. 운동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나의 달라진 마음은 그것을 감사하게 잡는다.

이렇다 저렇다 나 옳음으로 정의 내리던 것이 무너지고 다른 것을 들이는 가운데 내가 알던 삶이 아닌 것 속으로 나 또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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