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겨울이 시샘을 해서 꽃샘추위가 오고, 그러다 보면 열감기가 유행이 돈다. 코를 훌쩍이며 기침을 하는 사람이 이비인후과에 가면 태반이고,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행은 동참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올해도 어김없이 감기로 봄을 맞이했다. 목소리는 걸걸해졌고, 포트에 60도로 데운 물을 자주 마셔 화장실도 평소보다 자주 갔다. 혼자서 진단해 본 바 아파서 죽을 정도는 아니고, 병원에는 늘 아픈 사람이 가득하므로 이번에도 병원 가기를 패스한다. 병원에 대기하는 동안 더 많은 감기바이러스에 노출될 것이고, 집에는 5일치씩 처방받아먹다 남은 약들이 많기도 해서다.
가족들이 줄지어 감기로 컨디션이 떨어져 부랴부랴 선반에 놓아둔 약들을 찾아봤다. 각종 상비약부터 유산균, 다이어트 보조제, 효소, 노니, 홍삼, 영양제 등. 몸에 좋은 것은 넘친다. 같은 선반에 있는 간식칸은 채워놓으면 순식간에 비워지는 마법이 발현되던데 이상하게도 몸에 좋은 것들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프로폴리스'. 나는 핸드폰으로 재빨리 검색한다. 그리고는 면역력도 약하고 비염을 달고 사는 우리 가족에겐 프로폴리스가 최적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프로폴리스를 누군가에게 먹여본 적은 없다. 다만 나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래도 이 참에 다 같이 먹어보는 거지뭐. 나는 식구들에게 봄맞이 긴급공지를 날렸다.
"이제부터 우리는 매일 프로폴리스를 먹는다!"
저녁을 잘 먹고 있던 세 명이 어안이 벙벙한 듯 나를 쳐다봤다. "뭐요? 프로... 뭐?"
"프로폴리스. 이거 몸에 좋은 거야. 환절기라 우리 전부 고생하잖아. 꿀벌이 만드는 양봉의 부산물이래."
밥을 먹던 세 명은 '아. 그렇구나.'라는 표정으로 가볍게 내 설명을 가벼이 흘리고 젓가락질을 마저 했다.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던 가족들에게 나는 준비를 마쳤다는 듯 병에 담긴 프로폴리스를 스포이드로 짜서 아기새처럼 벌린 입에 손수 넣어줬다. 쿠엑!! 배부름에 침대에서 쉬고 있던 남편은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방에서 나와 물을 연거푸 마셨다. 여전히 가축우리 안에 갇힌 돼지처럼 꾸엑꾸엑 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냉동실에 넣어놨던 초콜릿을 입안에 넣으려고 해서 재빠르게 입을 막았더니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웃기는지 깔깔대고 웃었다. 솔직히 오버다. 물론 입에 쓴맛이 도는 것은 인정하나,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고? 나를 죽이려고 독약을 줬냐고? 에이. 왜 그러시나 이 양반. 덩치값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 아이들은 아빠 등을 어루만지며 "아빠. 우리도 다 먹었어. 우리도 죽을 것 같아."라고 한마디 거든다. 이렇게 프로폴리스 하나로 전우애 같은 게 싹텄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계절에 익숙해지기란 여전히 어렵다. 건강해지자 모두들!
비움의 과정
계절이 바뀌면 묵은 짐들을 꺼내 하나씩 정리하던 습관이 있었다. 집에 쓸데없는 물건을 많이 두지 않는 나는 버리는 것도 가감 없는 편이었다. 옷장에 옷은 눈에 보일 정도만, 새 옷을 사면 헌 옷 중 하나는 버린다는 게 내가 가진 철칙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일에는 방해꾼이 있다. 옷수집을 좋아하는 남편은 내가 정리해 비워둔 칸을 항상 침범했다. 엄연히 각자의 구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사정하면 나는 언제나 그를 봐주었다. 그럼에도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강수를 뒀다.
"봄이니 대청소 좀 하자! 나 내 칸에 있는 당신 옷들 죄다 버려버릴 거야. 그게 싫으면 이번주 주말까지 정리하도록 해!"
아내의 마음을 이해는 하겠으나 실천은 어렵다는 듯, 남편은 내가 비닐봉지를 가져다줘도 며칠 동안 정리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이가 드레스룸에 옷들을 초토화시키며 옷들을 차 안에 실어 담았다. 남편은 도무지 묘책이 없었던지 주말 빈티지마켓에 가서 본인이 셀러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날따라 3월의 바람은 매서웠고 남편의 손과 뺨은 내내 차가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신났다고 했다. 전날 회사에서 남몰래 가격표도 출력하고, 잔돈은 은행에서 넉넉히 바꿔다 놓고, 하루종일 앉아있을 간이의자와 간식도 준비했단다. 카톡으로 전송된 사진을 클릭해 보니 주차장 한 칸 크기에 남편의 옷과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옷이 70벌 정도 걸리는 행거 두 개를 주최 측에서 빌려와 그곳에 축구 유니폼과 니트류, 구제옷들로 가득 채웠고 캠핑테이블엔 모자와 비니들이, 바닥 돗자리 위엔 신발이 30켤레정도 놓여있다. '참 많기도 하다.' 혼자 생각하면서도 저만큼의 물건을 차에다 싣고 헛된 꿈과 희망(물건이 팔려 한나절 사이에 완판 될 거라는 마음)을 품은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비움의 과정은 웃기다. 깎아달라는 말에 난감하고, 손님이 돌아서면 허탈하다. 매번 물건을 사 보기만 하다가 팔아보니 장사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야 공감할지도 모른다. 뭐가 어찌 됐던 경험은 편협된 생각을 넓혀줄 것이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팔라지 않은 물건들을 다시 옷걸이에 걸었다. 그 참에 내가 건네줬던 비닐봉지에 과감히 미련 없는 옷들을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객관적인 지표가 형성되었고 그 사이 옷장은 조금 널널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남편은 번 돈으로 새로운 옷들을 샀는지 집에 택배상자가 쌓이고 있다. 비우면 채우고, 채우면 비우고. 뭐 이런 아이러니. 항상 도돌이표이지만 그래도 이것이야말로 만물의 상생을 위한 공존일 테니 그걸로 잔소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