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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Sep 07. 2022

인생의 책갈피

진짜 행복을 발견한다면

아이의 유치원 등원 길에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을 봤다. 가을비가 내린 후라 물에 잠겨있는 단풍잎이 유난히도 빨갛고 반짝거렸다. 물에 비친 것이 빳빳하게 코팅한 책갈피가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문득 어릴 때 손수 만들었던 책갈피가 생각났다. 봄에는 색이 화려한 꽃잎들로, 여름에는 네 잎 클로버를 찾아, 가을에는 떨어진 낙엽 중에 가장 예쁜 것을 찾아와 잘 말려 문방구 아저씨에게로 가져갔었다. 잎들이 부서지지 않게 말리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풀숲의 수많은 것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 집어 든 것이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몇 초 사이에 더 예쁜 것이 있을 것 같아 바닥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행복에 만족할 줄 모르고, 더 큰 행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불안 때문이었을 거다. 아니면 내가 찾지 않으면, 남들에게 그 행복을 빼앗길 것 같은 기분에서였을까.

친구가 가지고 온 네 잎 클로버 책갈피가 부러워 나도 하굣길에 클로버를 찾아다닌 적이 있다. 번번이 찾지 못하여 결국은 세 잎 클로버에 다른 잎사귀 하나를 더해 몰래 코팅을 맡긴 적이 있었다. 티가 나진 않았지만, 코팅까지 마친 나의 가짜 네 잎 클로버는 어쩐지 행운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 후로 가짜 책갈피를 만드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 다시 들추어보고 싶은 문구를 발견하면 책장에 끼워놓던 책갈피. 내 인생에 책갈피는 몇 개나 끼워져 있을까. 수많은 순간들 중 다시 재생하고 싶은 순간들은 무얼까. 언제 펼치더라도 그 기억들은 다시금 같은 마음으로 재생될 터다.




결혼하고 벌써 세 번의 이사를 했다. 그러는 동안 짐도 가구도 여러 개가 바뀌고 버려졌다. 10년의 세월만큼 먼지 쌓인 유물 같은 물건들도 발견되곤 한다. 집 정리를 하면서 오랜만에 한쪽 구석에 있던 결혼식 가죽 앨범을 꺼내봤다. 신부대기실에서 수줍게 앉아있는 내 옆에 여러 사람이 오고 간다. 그중에도 좋아하는 선생님의 결혼식에 찾아왔던 제자들이 아직도 엊그제처럼 눈에 선한데, 세월의 야속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결혼하고 그 학교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미 겨울방학이 되기 전 인사도, 정리도 끝낸 뒤였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겠다고 방학임에도 잊지 않고 결혼식장에 와준 고마운 아이들이었다. 그중에는 용돈을 모아 축의금을 내고 간 아이들도 있었고, 장문의 메시지로 신부를 울린 아이도,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하며 이제야 수줍은 마음을 고백한 아이도 있었다. 이제 사진 속 제자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아니면 늦깎이 예비역이다. “선생님이 다니던 대학교에 들어갔어요. 축하해주세요!”라고 연락 왔던 부반장은 아직도 군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어설프고 아기 같은 모습부터, 북한도 무서워한다던 중2병을 함께 겪었던 나의 ‘첫사랑’ 같은 아이들. 선생님의 연애에 관심을 갖고, 진도를 빼야 하는 수학 시간에 몸을 베베꼬며 띠동갑보다 한 살 더 많은 사람에게 배울 것이란, 학교 공부보다 인생 공부라며 책을 덮고 애교들을 부렸었다. 교무실에 앉아 있으면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찾아왔다. 어떤 아이는 모르는 수학 문제를 물어보려고, 어떤 아이는 반 아이들 중 진심을 터놓을 친구가 없어서, 어떤 아이는 그냥. 누군가에게 내가 그렇게 큰 존재였고, 사랑받고 있었음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학교 체육대회가 되면 그때도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예뻤던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응원도 해야겠고, 사진도 찍어주고 싶어서 참 바빴다. 학교 축제 때는 아이들의 짧은 교복을 대신 입고, 다른 선생님들과 무대에 오르기도 했었다. 교복을 빌려준 아이보다 키가 더 큰 내가 입었더니 키 차이만큼 더 짧아진 교복 치마가 아찔해서 난감했지만 재밌었다. 과거의 추억이 인생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즐거웠던 기억, 슬펐던 기억, 고통을 참았던 기억, 묵묵히 이겨냈던 기억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걸맞도록 내가 원했던 학교는 아이들에게 쉴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지만 수준별 수업이 이루어지는 ‘수학’이라는 과목은 학교에서부터 아이들을 평가의 잣대로 줄을 세웠다. 아이들은 웃으며 같이 놀던 선생님이 시험기간만 되면 공부를 다그치는 모습에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로만 행복을 좇는 가짜였다. 어릴 때 몰래 클로버에 잎을 덧붙인 것처럼.


가끔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죽 내려 아이들의 변한 모습을 천천히 살펴본다. 수염을 기르고 키와 다리는 더 길어진 멋진 남자아이들, 여전히 그 얼굴 그대로 남아있는 아이들, 중학생 때보다 옅어진 화장이지만 더 예뻐 보이는 성숙한 여자아이들. 이제 아이들은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았을까? 그 후에도 여러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아직도 그 아이들만 생각나는 거 보니 나에게 그 시절은 다림질로 판판하게 손수 코팅한 그리운 책갈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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