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기 전에는 ‘서른’을 불안해하며 관련 책들을 사서 읽고 내 앞날을 대비하곤 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공병호의 우문현답>,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등의 책들은 한때 나의 가방 속에서 화장품 파우치와 늘 함께 있던 책들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막연한 불안함보다는 답지를 살짝 엿보더라도 알고 있는 불안함이 내게는 큰 의지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앞날의 등대가 되어주진 못했다. 결국 빛이 비추는 쪽으로 항해를 해야 하는 것은 나였는데, 나는 그런 용기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올해 초에 인상 깊은 드라마를 봤다. 이 드라마는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울음을 장맛비처럼 쏟아내야 하는 드라마였다. 현재 내 나이와 너무나도 찰떡인 <서른 아홉>이란 드라마였는데, 마흔을 코 앞에 둔 세 여자의 현실에 대한 고민과 삶의 깊이가 마치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인가?’를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또한 세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찬영이는 말기암 선고를 받았지만 신나는 시한부를 꿈꾸며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려고 노력한다. 5년 전에 갑상선암을 처음 알았을 때의 겁 많고 불안했던 나와는 전혀 다른 기백이다.
예전에는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고 또 그것과 별개로 병을 얻게 되기도 한다. 둘째 아이를 낳고 갑상선에 암이 발견되었을 때 가족들의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다른 암처럼 무서운 암도 아니지만 내 앞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덩어리가 까딱 잘못하면, 나를 끌고 갈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후회되는 일들이 주르륵 머리를 훑었다. 부모님에게 반항했던 일, 속 썩인 일, 내 가족을 더 알뜰히 챙기지 못한 일, 어제 큰 아이에게 별 거 아닌 일로 화낸 일, 남편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일, 나에게 늘 매정했던 일 등. 죽음 앞에서 후회스러웠던 삶을 애원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음은 결국 삶과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잘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은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와 동의어로 느껴진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태도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질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성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손에 쥐어진 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바깥에 있는 것들보다 나의 안에 있는 것들이 중요했다. 나는 이제 나의 마음을 잘 살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지나가는 풀잎 하나에도, 꽃봉오리 하나에도 따뜻한 시선을 주고 말을 건넨다. “아이고, 올해도 예쁘게 피었네.”, “어제는 이 모양이 아니었는데 금세 또 자랐네!” 하며 자연의 신비로운 경이에 감탄을 한다. 그렇게 자라나고 소멸되고 또다시 탄생하는 모든 것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러면서 인간도 다를 게 없음을 또 한 번 받아들이는 경지에 오르는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욕심내고 소유하려 한다. 가지지 못해서 불안해하고 오르지 못해서 불행해한다. 남들의 시선을 늘 신경 쓰며 살았던 예전의 나의 모습을 반성한다. 나에 대한 자기 평가보다 남들의 평가에 귀를 쫑긋거리고 사느라 누리지 못했던 나의 젊고 소중한 날을 이제는 당당하게 누려보고 싶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제는 더 이상 책을 들추며 인생의 정답을 알아낼 필요도 없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 된 순간, 그래서 요즘이 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