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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Dec 05. 2022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온 집안을 다 헤집어놔야 직성이 풀렸다. 무거운 가구들을 질질 끌어서라도 가구 배치를 요리조리 옮겨보고, 책장의 책을 모두 빼 다시 정리하더라도 기분에 따라 책 정리를 다시 했다. 색깔별로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기분이 무지개처럼 밝아지기도 하고, 고전 책들만 따로 올려두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다. 책 정리처럼 옷들도 그랬다. 백화점의 쇼윈도에 있는 옷들처럼 비록 내 옷은 만 원짜리 티셔츠일지언정 어깨가 늘어지지 않는 논슬립 옷걸이에 걸어 명도 별로 주욱, 모든 옷을 걸어뒀다. 끼리끼리 분류하고 가치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을 따져 쉽게 버리기도, 오래 간직하기도 했다. 시험기간이 되거나 남자 친구와 싸운 날, 엄마에게 혼난 날이면 나는 늘 몸에 진이 빠지도록 에너지를 쏟아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두 다리를 뻗고 누우면 속이 후련했다. 마음속에 말 못 하던 응어리가 한꺼번에 사라진 듯했다.


지금의 내가 인테리어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 것도, 사진을 찍을 때 남들과 다른 구도를 생각해보는 것도, 집안을 보다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도 모두 다 20년 넘게 내 방을 정리하고 배치하며 성장하게 된 것이다. 글이나 말에 요점만 간략하게 말하려 하는 것도,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었던 것들도 모두 널브러진 것을 싫어하고 단정함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결국 이제야 나는 느낀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능적인 습득을 위한 행동들도 필요하지만 내 마음을 스스로 정돈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도 필요했다는 것을.




꿈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어느새 아이가 둘이 되고 나는 그저 집안에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육아와 살림하는 것이 하루의 온전한 일과였던 때에는 그렇게 매일매일을 살다 보면 10년, 20년이 흐르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주체가 ‘나’에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를 찾고 싶었을 때 내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는 듯 보였다. 실력도 경력도 모두 하늘의 구름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다 흩어졌다. 되고 싶은 것은 많지만 할 수 없는 것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마냥 하늘만 쳐다봤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생각도 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나의 마음을 가지런히 만들어주는 과정이 바로 쓰는 행위였다. 글을 쓰면서 외로움이 다른 따뜻함으로 덮어지는 중이다. 모난 서글픔이 둥글게 다듬어지는 중이다. 내 이야기를 충실하게 하나씩 풀어헤쳐 정리하고 분류하다 보면 나는 결국 ‘마음 정돈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꿈’이라는 것을 품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작은 꿈이라도, 혼자만의 은밀한 것이더라도, 그저 꾸는 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오늘의 집안일을 마친 나는 오늘도 식구들이 잠든 새벽에 노트북을 열었다. 이 행위를 마치고 나면 여전히 예전의 그때처럼 침대에 누울 때 후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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