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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Sep 16. 2022

순간의 시간을 공유하는 법

지금-여기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은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나에게 회사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은 핑크빛 하늘이 담긴 현장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영롱한 핑크빛의 하늘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도로, 빨간색 신호등이 켜져 있고 주황색 조끼를 입은 신호수만이 도로를 지키고 있다.


“몇 시에 볼 수 있는 하늘이야?”

“6시 11분”


잠깐 사이에만 볼 수 있는 핑크빛 하늘을 보고 싶어 시간을 물어봤다.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내일 6시 11분에도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매일 똑같이 시간이 흘러가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늘 새롭기에 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 단정할 수없다.

지금-여기. 참 멋있는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의 시간만 쫓아가면 현재는 불행하다. 때문에 항상 지금-여기에서의 내 감정을 살피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기록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두 달째 남편은 초등학생이 쓰는 좁은 칸 일기장에 늘 파란 펜으로 일기를 쓴다. 손으로 꾹꾹 눌러 담는 진심에는 그의 손에 쥐어진 펜이 만년필처럼 보일 때도 있다. 어제의 남편 일기를 살짝 들여다봤더니 그곳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오늘은 연휴 끝난 이틀째인데 벌써 추석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출근길 새벽 5시 기상은 추석 내내 9시에 일어나서인지 제일 힘들다. 현장 업무 중간에는 공사구간 내에 법정보호종 ‘흰발 농게’가 발견되어 서식지 정밀조사를 했는데, 와이프가 네이버에 한 번 쳐봤으면 좋겠다. 제법 신기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다.  


일기장을 덮고 실실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런 귀여운 글이 있나. 사람은 목소리를 내어 진심을 내보이고 싶을 때도 있고, 글로 진심을 내보이고 싶을 때도 있나 보다. 남편은 똑같은 업무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심장에 콩콩콩 노크하는 모먼트가 일상 속에 녹아있었다. 나도 바로 ‘흰발 농게’를 검색해봤다. 조그마한 몸집에 한쪽 집게발만 커다랗고 새하얗게 확대시켜 놓은 듯했다. 너무 귀여워서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사진들을 찾아봤다. 남편이 보여주고 싶었던 현장에 내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순간 이동하여 남편 곁에 와닿아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 새벽에 보게 된 핑크빛 하늘. 나는 그 하늘에 어울릴 핑크 스웨츠(Pink Sweat$)의 노래 3곡을 사랑을 담아 보냈다. 내일 혹시, 또 한 번 같은 하늘을 보게 된다면.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마음속으로 순간 이동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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