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로리 Sep 30. 2022

종이비행기를 탄 여행

한창 ‘욜로’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욜로’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로,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취미활동이나 자기 계발, 여행 등은 이제는 빠질 수 없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직장인들이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 전업주부인 엄마들도 그런 날이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일에서 한 발짝 벗어나 책을 즐겼다. 책을 펼치면 나는 노르망디 해변에도, 타히티 섬에도, 월든 호숫가 숲 속에도 갈 수가 있었다. 누군가의 생각과 경험을 사서 글로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꽤 즐거운 일이었다. 책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도 다양했다. 어떤 날은 미로 속에 갇힌 것 같았고, 어떤 날은 우연히 나만의 장소를 발견한 듯 감격에 차 있었다. 책 속에는 수많은 ‘오직 하나뿐인 인생’이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1년에 50권 정도 읽던 내가 어느 순간 100권은 거뜬히 읽어내게 된 것도, 아마 책을 통해 지속적인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만큼 책을 좋아하는 J가 어느 날 신기한 책을 보여주었다. 자주 가는 독립서점에서 산 것이라고 했는데 겉모습부터 책이라는 기본 형태의 고정관념을 깨준 책이었다. 직사각형의 봉투 안에 들어있는 일본 히로시마 탑승권, 그리고 여행사진이 담긴 엽서 여러 장. 그것이 책이라니. 엽서의 뒷면에는 짧은 글이 적혀있고, QR코드를 핸드폰으로 찍으면 그 여행지의 영상들과 작가의 멘트가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다. 비행기 티켓 봉투에는 이런 말도 적혀있다.


‘항공기 출발 1분 전에 휴대폰을 켜주세요.’


위트가 철철 넘치는 출판물이다. 이제 책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도 생겼다. 코로나로 당분간 여행을 경험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건 어쩌면 사람들의 착각이다. 가상현실 VR영상이나 항공촬영 기법이 발달하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랜선 여행이라도 떠나고 있지 않은가. 아쉬움을 충족하는 방법도 이제는 실로 발전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살고 있는 빨강머리 앤이 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상상의 힘을 앤처럼 발휘하고 있다. 네모난 책이 어디까지 나를 이끌고 갈지 기대가 된다. 삶은 순간의 합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나는 독서를 통해 찰나의 순간들을 채우면서 나의 삶을 즐거운 인생으로 바꾸고 있는 듯하다. 전업주부로만 살다가 그나마 내 손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책들 때문에 내 인생이 변하고 있다. 주어진 환경에 답답해하면서 방향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면, 모두들 새로운 ‘욜로’를 찾아보길 권한다. 현재를 즐기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내가 종이비행기를 타고 여전히 여행 중인 것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원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