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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Dec 09. 2022

공주, 로봇을 사들이자.

#낫워킹맘

내가 보는 엄마는 늘 분주했다. 아침 8시까지 바쁜 아침을 보냈고, 그 후엔 바로 출근을 했다. 종일 서서 일하는 직업이었던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매일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런 엄마를 도와 설거지라도 조금 거들라 치면 엄마는 엉덩이로 주방을 점령하고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시집가서 해도 돼. 설거지도 평생 할 텐데, 벌써부터 손에 물 묻히고 살지 말아”


내가 커서 자신처럼 고생하며 살지 않길 바랐던 엄마는 본인의 희생으로 나를 공주처럼 키웠다. 우리 집엔 남들 다 있는 그 흔한 전자레인지도 없었다. 일을 하는 엄마였지만 삼시 세끼 엄마의 집 반찬으로 배를 채우길 바랐고, 라면이나 레토르트 음식들, 간식들도 거의 먹이지 않고 나를 키웠다.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퇴근하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손으로 뚝딱뚝딱 집밥을 꼭 차려주셨고, 걸레질도 기계는 믿지 못하고 못쓰게 된 수건을 두 번 접어 꼭 손걸레질로 바닥을 훔쳤다. 빨래도 양이 작으면 굳이 욕조에 넣고 발로 꾹꾹 밟아 때를 빼고 손으로 비볐다. 나는 늘 그런 엄마의 뒷모습만 지켜봤다. 공주처럼 그저 한 발 뒤를 빼고 그것이 당연히 ‘엄마의 일’이란 생각과 함께.


하지만 정말로 결혼을 하고 보니 나 또한 ‘건조하고 쪼그라드는 이 손이 내 손이 맞던가?’ 의아해하며 매일 핸드크림을 손등에 짜서 비볐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결혼반지만이 세월을 비껴간 듯, 홀로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와 비교하면 손으로 하는 일이 몇 배쯤 줄어든 것이겠지만 흘러간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어도 집안일은 끝이 없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정해진 업무 시간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늘 아이들 뒷바라지에 정리정돈까지 하다 보면 쉴 틈이 없었다. 무급으로 하는 노동치고는 한때 공주였던 내가 느끼기에 엄마라는 직업은 너무 극한직업이다.




집안일을 홀로 잘 해오다가도, 어느 순간 남편과 부딪힐 때가 오는데 주로 내가 집안일을 해오며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일 때 그렇다. 집안일은 하찮은 일이고, 바깥일은 대단한 일처럼 치부될 때, 무엇이든 회사와 관련된 일은 다 참아줘야 하는 순간에, 내가 뱉은 작은 투덜거림에 “그렇게 힘들면 네가 대신 돈 벌어 보시든가!”라고 응수할 때 나는 무너지고 초라해진다. 마음에 매질을 당하는 순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의 일처럼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는 나의 일도 존중받아야 마땅한 일인 것을. 끝이 없는 집안일에서 남편들이 한 발짝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내의 존재는 덧없이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혼자 하기 버거운 집안일을 하며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것들을 조금씩 기계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생일 선물로 가방이나 액세서리 대신 로봇청소기, 음식물 처리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같은 생활가전을 사들였다. 집안일로 임금을 따로 받고 있지는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실용적인 물건으로라도 전업주부의 임금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기계는 나 혼자서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다 같이 쓰이는 유용한 물건이다.


로봇청소기는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는 기계가 되었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며 바닥을 정리하고, 청소기 버튼을 누른다. 걸레질까지 부탁하고 나면 그 사이에 가사일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음식물 처리기 또한 엘리베이터 탈 때 자유로운 두 손을 선물해주었다. 식기세척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식기세척기 쓰는 사람들도 서서 애벌세척하고 있다며, 그렇게 하고 기계에 그릇들 줄 세우는 것보단 후다닥 해치우는 것이 속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속이 터질지언정 내 손은 트지 않는단말이다. 그동안 손으로 하던 설거지는 설거지감이 계속 쌓이면 스트레스가 곱절로 왔지만, 식기세척기는 더 넣을 설거지감을 찾으며 가끔 ‘득템’하는 기분도 든다. 컵과 그릇으로 꽉 채운 식기세척기가 돌아갈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내 기분을 이리도 좋게 만들어주는 걸 보면 기계들은 이미 우리가 모르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것 일지 모른다.




나는 전업주부이지만, 이제는 내가 집안일을 모두 하지 않는다고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일에 있어서 효율성을 따진다면 마찬가지로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일을 하느라 썼던 시간을 다른 가치 있는 시간으로 바꾼 것이 왜 눈치 볼 일인가. 중요한 것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아닐까. 지금까지 공주로 자라왔던 모든 여성들에게 권한다. 이제는 집안일보다  ‘나’에게 투자해보자고.




#낫워킹맘 #엄마에세이 #일하지않는엄마가하고있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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