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워킹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내용은 몰라도 제목은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순서는 다소 헷갈릴지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 하나 끝내주게 지은 것 같다. 얼마나 깔끔하고 명확한 분류인가. 우리가 비록 복잡계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왠만한 건 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를 포함해서.
좋은 맘
먼저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일까 생각해본다. 맹자의 어머니,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에디슨의 어머니, 김연아, 손흥민 어머니 정도 되야 좋은 엄마일까? 사실 좋은 엄마의 기준부터가 모호하긴 하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잣대를 놓고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기에.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나의 엄마는 좋은 맘이었을까? 물론 좋은 맘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나에겐 최고의 엄마였으니까. 그렇다고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고 대답하는 이유는 왜 일까? 역시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냥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걸까? 내 자녀가 ‘우리 엄마 최고!’를 외쳐주면 좋은 엄마가 되는 걸까? 남편 내조에 아이들 교육은 기본이고 시댁 식구까지 챙기는 현모양처형 엄마들, 희생과 헌신으로 무장된 나이팅게일급의 천사표 엄마들, 원더우먼급 멘탈과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에 가까운 엄마들이 좋은 엄마라면 나는 이.생.망.이다.
나쁜 맘
좋은 맘은 정의하기도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나쁜 맘은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뉴스에 등장하는 계모들은 동화 속 계모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나쁜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계모, 계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친부모들의 경우다. 아이를 베란다 쇠사슬에 묶어 놓질 않나, 욕실에 가둬두고 냄새난다고 락스를 뿌리질 않나, 캐리어에 가둬두기 까지 하는 그들을 과연 부모라 할 수 있을까? 아니 사람이긴 할까? 부모가 게임에 빠져 있는 동안 갓난 아이가 아사하는가 하면 쇼파에서 떨어졌다는 아이의 온몸이 학대의 흔적으로 가득하기도 한 뉴스 속 그들은 악마였다. 아마도 나쁜 맘이란 이런 엄마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엄마들만 나쁜 엄마일까? 언젠가 대형마트 앞에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엄마를 본 적이 있다.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 일곱 살쯤 됐으려나? 엄마의 손찌검에 아이의 안경이 날아갔다. 겁먹은 아이는 휘청이던 자세를 다시 곧세웠다. 아이에게 안경 안 줍고 뭐하냐며 소리를 지르는 엄마. 손찌검도 모자라 엄마의 입에선 저주에 가까운 협박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친엄마가 맞을까? 아이가 잘못을 했으면 얼마나 했길래 저렇게까지 혼낼까? 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또 창피할까? 마침 사람들이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공공 장소인데...’ 하루 종일 그 장면이 떠나질 않았고 나는 그 엄마를 나쁜 엄마로 낙인 찍었으며 나중에 저런 엄마는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후 세월은 흘렀고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도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지만 미운 네 살 미친 일곱 살이란 말의 실체도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에게도 나쁜 엄마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내 안에도 무시무시한 헐크가 잠재해 있다는 걸. 아이가 미운 일곱 살이 지나면서 아이 몸에 손만 안 델 뿐이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언성과 협박은 계속됐다. '아이가 밖에서만큼은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창피하다'고 하는데도 한 번 열이 받으면 좀처럼 절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은 학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는데 몇 번을 말해도 꼭 닥쳐서야 준비하는 아이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집에서 버스타는 곳까지 걸어가면서도 꼬박꼬박 말대답까지 하길래 순간 욱! 나도 모르게?(과연 몰랐을까?) 우산으로 아이의 우산을 내리쳤다. 순간 아이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내 안의 헐크는 이미 뛰쳐 나왔고 아이의 우산엔 작은 구멍이 났다. 과연 아이의 우산에만 구멍이 났을까? 놀란 아이의 마음엔 더 큰 구멍이 나지 않았을까? 버스는 떠났고 그 자리엔 나쁜 엄마만 덩그라니 서 있었다.
이상한 맘
이상한 맘은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사이 어디쯤에 있는 엄마들이지 싶다. 어쩌면 많은 엄마들이 이상한 엄마들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이상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만 이상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엄마들. 엄마 매뉴얼이 따로 없다보니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엄마들은 누군가에겐 이상한 존재로 비칠 수 밖에 없다. 하루 종일 책만 보는 엄마도 이상하고, 아이들 건강을 위한다는 유기농맘들도 이상하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며 엄마의 행복을 먼저 챙기는 엄마도 이상하다. 헬리콥터맘도 돼지맘도 다 자녀를 위한 건데 어딘가 이상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도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에겐 이상한 엄마가 된다.(나쁜 엄마가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일수도) 사춘기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란 그저 하찮다. 아이들 핸드폰 연락처에서 엄마를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 대신 이상한 단어들이 대신한단다) 엄마들이 변한 걸까? 아니면 아이들이 변한 걸까? 아님 둘 다? 그냥 이상한 엄마에 이상한 자녀들인 건가? 그들은 또 그렇게 이상한 부모가 되는 걸까?
훌륭한 엄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니 그런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좌절과 절망 속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좋은 엄마... 그 기준은 세상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옆집 엄마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고, 드라마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엄마가 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비교하는 걸 멈추는 일이었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들(아이들 간식까지 요리잡지에서나 나올만한 퀄리티에 세련된 플레이팅까지), 청소를 잘하는 엄마들(창틀까지 매일 닦으며 집이 아니라 모델하우스)아이들 교육 정보통인 엄마들(잘 나가는 학원 원 투 쓰리를 다 꿰고 있음), 엄마표 공부에 달인인 엄마들(내 눈엔 그저 리스펙트한 엄마들), 세상 부지런한 엄마들(그녀들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듯) 경제관념이 탁월해서 재태크에 열심인 엄마들(자신들의 노후와 아이들의 미래의 청사진이 이미 다 그려졌음), 아이들과 공감이 되고 소통이 되는 엄마들(나의 희망사항), 자기계발에 힘쓰는 엄마들(엄마가 행복해야(잘되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이론에서 비롯됨), 직장생활로 주말에만 엄마가 되는 엄마들(평ㅇ소의 미안한 마음을 보상하고자 캠핑, 체험학습 등 주말 이벤트가 많음).
이러한 엄마들을 보면 이래서 기가 죽고 저 엄마를 보면 저래서 위축되는 시간들만 계속됐다. 나는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도무지가 할 줄 아는 게 없는 엄마일 뿐이었다. 경제력도 없어, 특별한 재능도 없어, 열정도 없어, 의욕도 없어, 체력까지 없어... 무의 경지란 이런 걸까? 비교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결국 관찰 대상들에게 비교만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세상엔 무수히 다양한 엄마들이 있는데 이런 엄마들을 좋은 엄마라고 규정하고 롤모델로 삼으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더라. 그들과 같지 않은, 같을 수 없는 나는 졸지에 나쁜 엄마가 되버리니까. 아무리 기를 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는 한 좋은 엄마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까지 흘려보낸 나의 한숨과 눈물이란...
내 수준에 맞게 내 능력에 맞게 내 기질과 취향 안에서 진심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가뜩이나 비교와 경쟁이 아이들 숨통을 조이고 있는 세상에서 내 아이에게 숨 쉴 수 있는 곁을 내어 줄 수 있으려면 엄마인 나부터 다른 엄마와 비교하는 걸 멈춰야 했다. 좋은 엄마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야 했다. 세상은 어쩌면 이상한 엄마들이 만들어가는 것일지 모르니까. 좋은 맘, 나쁜 맘 말고도 이상한 맘들이 있어서 나에겐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