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애
“해 지기 전에 빨리 암릉부터 내려가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미끄러운 바위를 내려가는 건 등산보다 하산이 더 위험했다.
살기 위해 밧줄을 맨손으로 꽉 잡았다.
손바닥이 점점 빨개지고 쓰리기 시작했다.
우린 겁도 없이 장비도 없이 수락산에 왔기 때문에 등산 장갑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집중하고! 발밑에 잘 보고!”
“조심조심...”
해가 지기 시작하니 주변이 고요해졌다.
암릉을 거의 다 내려올 때 즈음
아까 올라오다가 떨어트린 나의 물병이 보였다.
“푸핫! 이거 내 거네!”
“그러네 아까 떨어트린 거네.”
“마침 목말랐는데, 마셔야겠다.”
우리는 잠시나마 키득키득 웃으며 숨을 돌렸다.
“다 왔어요! 이제 암릉 구간은 끝이야!”
“흐아.... 너무 무서웠어. 이제 깔딱 고개지?”
깔딱 고개는 올라갈 때도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가을이라 땅에 낙엽이 잔뜩 있어 발이 미끄러웠다.
게다가 해가 완전히 저버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그런데 내 핸드폰이 켜자마자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오빠! 내 폰 방전됐어! 어떡해!”
“걱~쩡 하지 마! 내 거 마이걸이 들어.”
불안해하는 나를 진정시키며 그가 말했다.
“하... 아이폰 배터리 교체 좀 진작 할걸. 성능이 70퍼밖에 안돼 이제.”
“괜찮아! 발 조심하고 천천히 내려와요.”
“근데 어떻게 우리밖에 없지? 아무도 없지? 하긴. 다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갔겠지. 아니 근데 아까 정상에서 우리 말고 남아있는 사람들 많았는데?”
나는 무서워서 계속 재잘거렸다.
“오빠, 뒤에서 무슨 부스럭 소리 났어. 멧돼지 아니야?!”
“에이 아니야, 내가 있잖아 걱~쩡! 하지 마!”
이제 발목도 후들후들, 종아리도, 허벅지도 덜덜거렸다.
‘미끄러질 것 같아. 미끄러지면 안 돼. 조심. 조심.’
혼자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하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순간 낙엽을 밟고 미끄러져 발목이 꺾이며 주저앉았다.
“아악!!!!!”
“괜찮아?!”
“으아앙!!!!!!”
나는 주저앉아 발목을 잡고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
“발목 움직여봐. 움직일 수 있어?”
다행히 발목은 아주 잘 둥글게 둥글게 돌아갔다.
그런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깜짝 놀랐구나? 무서웠구나? 다쳤을까 봐? 괜찮아, 괜찮아.”
어두운 산길을 긴장하며 내려가고 있었는데,
절대 넘어지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발목이 꺾여 넘어지니 순간 겁이 나서 울음이 터졌다.
‘서른세 살이 이렇게 애처럼 울어도 되나...’ 속으로 머쓱해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나를 진정시키려 능청맞게 떠들어댔다. “마이걸이 다치면 내가 업고라도 가니까 걱정하지 마!”
“근데 뭐가 무서워서 눈물이 났어?”
“만약에... 다쳐서.. 못 일어나서... 119 부를까 봐....”
“구급차 오면 개이득 아니야? 들것에 누워서 갈 수 있어!”
“치... ” 겨우 웃음이 나왔다.
“마이걸! 하늘 봐! 달 좀 봐. 달빛이 엄청 밝게 느껴진다.”
“그렇네. 달이 엄청 밝네. 옛날 사람들은 밤에 달빛으로 공부했다는 말이 진짠가 봐.”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런 산길을 어떻게 다녔을까? 그땐 산짐승도 많았을 텐데.”
깜깜한 산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길고 긴 깔딱 고개 구간이 끝났다.
그리고 드디어 멀리서 자동차 소리,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이걸! 저기 봐! 불빛 보인다 이제!”
“불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다 왔나 보네.”
이제야 멀리서 가로등 불빛이 보이며 산책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눈물이 고였다.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이다. 다 왔어요.”
그가 팔을 벌리며 말했다.
나도 양팔을 벌려 껴안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이상하게 마음이 찡해지면서 울컥했다.
왠지 모르게 우린 서로에게 전우애 같은 걸 느꼈다.
“조선시대 사람 체험 자알~ 했다! 히히히”
무사히 내려왔다고 생각하니 농담할 여유가 생겼다.
“지금 몇 시지?”
왕복 4시간이 걸렸다.
“겨우 네 시간 동안 지금 우린 무슨 일을 겪은 거야?”
“체감상 12시간인데. 4시간 밖에 안 지났어? 와. 오늘 진짜 강렬하다.”
“이거는 영원히 회자될 하루다. 그렇지?”
“긴장 풀려서 너무 배고파. 고기 먹자.”
“그래! 다음에 수락산 한번 더 고?”
“아니요~ 싫어요~ 혼자가요~”
“근데 마이걸, 민둥산도 힘들었는데 끝까지 올라갔고 수락산도 결국 끝까지 올라갔다 왔잖아. 난 그런 마이걸이 참 멋있어.”
사실, 그가 함께했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과정에서는 그를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용기를 얻는 원천은 내 옆의 마이보이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