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해이터의 일기
정말 순수한 궁금증이 생겼다. 사실 일 년에 두어 번 산을 오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저 어르신들은 어떻게 저렇게 수다 떨면서 산을 오르락내리락하시는 걸까?
개구리와 새해에는 운동을 하자고 다짐했다. 하기 싫어도 올해는 5월에 웨딩스냅도 예약해 뒀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살을 좀 빼고 싶다. 그래서 많은 운동들 중 비교적 간편(?)한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몇 번 달리던 상관없이 총 9km를 달성하면 된다. 달성 못할 시 벌금 만원을 생활비에 보태기로. 그러나 야심차지 않아서인지 월요일 첫날부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첫 주는 둘 다 실패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눈치게임을 하다가 금요일까지 아무도 달리지 않았다. 개구리는 제안을 했다. “우리 주말에 아차산 등산 1회로 퉁치는 거 어때? 9킬로 달성 못하면 등산 1회.” “어. 나도 그 말하려고 했는데.” 머쓱한 웃음이 나왔다.
그리하여 일요일, 영하 10도의 날씨였다. 전날부터 강풍도 불었다. 덕분인지 뭔지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4개월..? 5개월 만인가? 기억도 안 나지만 아차산 등산로를 향해 가는데 이미 주택가 길목부터 가파른 언덕이 펼쳐졌다. ‘이야.. 여기 사는 사람들은 매일 운동도 되고 좋네.’ 등산로 초입에서 개구리는 나에게 귀여운 제스처와 함께 얼굴을 들이밀며 ‘파이팅! 파이팅!’ 외쳤다. 나는 이미 ‘등산=싫어’ 공식이 뇌에 박힌 인간이기 때문에 파이팅이라는 말이 너무 거슬렸다. 그리고 개구리는 늘 아차산을 오를 때마다 ‘아차산은 솔~찍히 껌이지. 너무 쉽지. Easy하지~ 쏘 이지~ 친절하잖아?’ 하며 혀를 똑딱! 튕기는 그런 소란스러움이 있다. “오빠. 파이팅이라고 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냥 산책하는 거다~ 한번 그냥 쓱 둘러보는 거다~ 하면서 뇌를 속이고 싶거든?” 사실 쉽다고 난리부르스를 추는 사람 앞에서 숨을 헉헉 거리며 ‘나 힘들어.’라고 하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파이팅이라는 말에도 긁히는 거다. (이상하게 나는 저런 상황에서 개구리가 날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무슨 심리인지? 꼬여도 한참 꼬였다.)
산을 오른 지 겨우 15분, 애플워치의 심박수는 165를 향해 뛰고 있었다. 귀까지 덮는 털모자를 썼지만 찬 바람에 볼과 코가 아려왔다. 코로 들이쉬는 숨은 고추냉이를 바른 듯 매웠고, 내뱉는 숨에 목구멍은 얼얼했다. 그때 뒤에서 개구리가 말했다. “난 오히려 이렇게 힘들고 몸이 고통스러울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 그래서 오히려 감사해. 적어도 죽어있는 건 아니잖아. 마이걸, 이슬아 작가가 하는 말이,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대.” 이 말은 내가 쉽게 지치고 예민해져 말을 날카롭게 하니 체력을 길러보자는 말이다. 과거에 개구리가 나에게 토로했던 서운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찔렀던 나의 날카로움이 부디 약한 체력 때문이기를 바라면서. 묵묵히 산을 올랐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나는 등산처럼 뭔가 힘든 걸 하고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껴서 감사하기보단 그 반대로 생각한다. 상상을 하는 거다. ‘지금 나는 죽음 또는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을 위기야. 그런데 신이 기회를 줘. 너 이 고통 그대로 겪을래? 아니면 등산으로 퉁칠래? 그래서 나는 제발 등산이요! 등산이요! 하면서 오르고 있는 거야. 그러니 죽을 만큼 큰 고통에 비하면 이건 별거 아니지.’ 이런 식이다.
개구리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느라 멈춰 섰고 나는 멈추면 더 힘든 걸 알기에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나를 놓친 개구리가 뒤에서 소리쳤다. “좀 천천히 가요! 경치도 좀 보고!” 나는 억울했다. ‘아니! 평소에는 내가 조금 뒤처지면 쉬면 더 힘들다면서 일으켜 세우면서. 왜 본인이 뒤쳐질 땐 나보고 멈추래?!’ 잠깐 멈춰 앉아있는데 얼어붙는 것 같은 강풍에 땀이 갑자기 식으면서 몸이 추워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일어나 무거운 발을 내디뎠다. 위에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가볍게 내려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 어르신도 있었다. 개구리가 감탄했다. “와, 어떻게 이 추위에 바닥에 앉아서 밥도 먹지?”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저 어른들은 이미 이 추위보다 더 한 인생의 풍파를 많이 겪어왔기에 겨울날 등산쯤은 그냥 놀이가 아닐까? 나도 저 나이쯤 되면 등산이 공원 산책처럼 쉬워질까? 아니 저분들도 사실은 나처럼 그렇게 쉬운 건 아닌 걸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숨이 차도 확실히 머릿속이 늘 시끄러운 건 맞는 것 같다.
하산을 하는데 이상하게 전보다 덜 힘든 느낌이 들었다. 코스도 짧은 것 같고. 이제 몇 번 와봤다고 등산 루트가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얼마나 걸릴지, 어떤 바위와 계단이 얼마큼 있는지 모른 채 등산할 때는 마냥 멀고 험하다고 생각했던 길이었는데. 내려갈 땐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개구리를 쉴 새 없이 조잘조잘 놀려대며 내려왔다.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감정에 뇌를 지배당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