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르는 방법
“헤엑!”
아주 거대한 암릉이 등장했다.
등산 배낭이라도 매고 올걸.
아무것도 모른 채 정말 뒷동산 오르듯 등산을 왔으니 이거 원.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허리춤에 끼우고 열심히 로프를 잡고 올라갔다.
‘아직 기회가 남았어. 지금이라도 내려갈까?’
그는 이미 조금 앞서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밑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좀 전에 뒤에서 대화하던 아저씨 두 분이 내 뒤로 바짝 올라오셨다. 나는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먼저 올라가세요.”
그러자 등산 고수의 냄새가 나던 아저씨는 단호한 눈빛과 배려하는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 먼저 올라가셔요~”
어찌나 눈빛이 단단하고 무섭던지, 교관님 같았다.
‘이런, 내가 포기하려는 걸 눈치채고 일부러 먼저 올려 보내시는 거 같은데.’
아저씨의 기에 눌려 다시 암릉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려갈 때 어떡하지? 더 힘들겠다. “
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이 미끄려졌다.
조금만 정신을 다른데 두면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조심해요! 내려가는 걱정 미리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
그가 위에서 소리쳤다.
다시 정신을 다잡고 한 발 내딛는 순간 허리에 묶어놨던 물병이 떨어졌다.
“아악! 안돼!”
물병은 가파르고 미끄러운 암릉을 타고 저 밑으로 한없이 떨어졌다. 옆에서 놀란 아저씨가 괜찮냐고 소리쳤다.
“예... 물병이 떨어졌어요..”
“에이, 버려 버려. 그냥 올라가, 위험해!”
‘물이 절반이나 남아있었는데....’
괜히 더 목이 말라오는 것 같았다.
“와! 여기가 정상인가? 아니 제발 그냥 정상이라고 할래.”
한참을 오르니 서울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잠깐 숨이라도 돌리려고 앉았는데 내려가는 등산객들이 한 마디씩 했다.
“이제 올라가면 이따 내려갈 때 해 질 텐데.”
“혼자 왔어요? 이따 어두워지면 위험할 텐데.”
사람들이 거드는 말에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지금 여기서 다시 내려가야 하나?’
조용히 암릉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어떤 아저씨는 놀라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디서 온 거니?!”
“밑에서 왔죠”
당연한 말이다.
“밑.. 밑에서 올라온 거야? 여기까지?”
“네!!”
초등학생 체력 못 이긴다더니 진짠가보다. 서너 명의 아이들이 신난다는 듯이 내려가며 나와 그를 발견하곤 말했다.
“헤드랜턴 있으세요? 지금 올라가면 이따 내려갈 때 어두워서 위험해요!”
“아 그래요? 정상까지 얼마나 걸려요?”
“30분이요! 아 아니다 한 시간 정도?”
“맞아 맞아, 여기 멧돼지 나와요! 뱀도 있어요! 조심하세요!”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오빠!!! 여기 멧돼지 있대 어떡해 우리! 지금이라도 하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점점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30분. 겨울이라 일찍 해가 진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에헤이! 정신 차려! 지금 저 초등학생 말에 휘둘릴 때야? 원래 애들은 호들갑 잘 떨어! 그러니까 얼른 올라가서 정상 찍고 내려오자.”
그는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키즈카페에서 노는 것 마냥 즐기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 아이들은 이게 고통이 아니라 재미겠지.
또 얼마를 올랐을까. 앞서가던 등산 고수 아저씨가 갑자기 멈추시더니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콜라 한 캔을 건네셨다.
“자, 이거 여자친구 먹여요.”
“어! 정말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거 마시면 에너지가 갑자기 차오를 거야.”
“감사합니다!”
“이건 물. 물도 챙겨요.”
아저씨는 콜라 한 캔도 모자라 물 한 병까지 챙겨주셨다. 아까 올라오다가 내가 물병을 떨어트린 것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갑자기 받은 호의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너무 감사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도 나에게 덩달아 나무 지팡이를 주셨다.
“자! 지팡이도 챙겨”
“감사합니다..!”
큰일 났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정상에 올라가야만 한다.
본인이 마시려고 챙겨둔 물과 콜라를 모두 남에게 베푼 사람의 응원을 받았으니 꼭 끝까지 올라가야만했다.
평소에도 자주 먹는 콜라지만 제로콜라만 먹다가 진짜 콜라를 먹어서 그런지, 너무 땀을 많이 흘리고 마시는 콜라라 그런지 카페인과 당 흡수가 쭉쭉 되는 느낌이었다.
콜라를 마시고 남은 힘을 쥐어짜서 열심히 올랐다.
정상에 가까워오니 땀이 식기 시작하더니 슬슬 추워졌다. 제발 무사히 정상도 찍고 하산도 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앞서던 고수 아저씨는 바위 위에 서더니 우리더러 올라오라고 했다.
“와! 여기가 드디어 정상인가요? “
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