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지는 장남이셨는데
취미로 배운 음악이 좋아 전공을 한다하니
집에서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음대를 가고 싶으셔서 집을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유학비를 모아 장가도 안 가고 유학을
가려다 엄마를 만나서 몇 년뒤 유학을 가시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미국에 살 때 미국에서는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초등학교 때
악기를 배워야했습니다.
남동생은 제가 쓰던 바이올린을 서서
연습하기 힘들다고 앉아서 하고 싶다해서
첼로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음악을 전공하는게 쉽지 않으니
남동생을 전공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으셨다고 합니다.
한국에 와서 남동생이 4학년때 취미로 첼로를 하다 우연히 나가게 된 콩쿨에서
장려상을 받고 신이 나서 시상식때
춤을 추며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6학년 누나들이 예중 입시로 바빠 시상식에
못 오고 마치 동생이 1등 입상자처럼 당당히 나간 것입니다.
칭찬을 받고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동생은 열심히 해서 전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가르치는 학생이 일 년이상 계속 콩쿨에 나가서 떨어져서 허리도 못 피고 계속 자신감 없어하다 어느 콩쿨에서 장려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생이 너무 신이 나서 눈빛이 생기가 돌고
제 말에 더 집중하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
상 하나가 사람을 살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콩쿨 심사를 간 적이 있는데 당연히
메이저 콩쿨이라든지 냉정하게 상을 안 줄 때도
있고 한데 동점자가 많거나하면
이 학생들을 다 예선에 올리느냐 다 떨어뜨리냐
심사위원끼리 회의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재주가 없다면 일찍 아는게 낫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 이런걸로 포기할 나약한
아이면 일찍 포기하는게 낫다는 이야기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오늘 들었던 생각은 한 번 예선 통과,
작은 상 하나 타는 것이 한 아이에게 다시 열심히 살
희망이 될 수도 있구나하고 저는 가능하면
상을 하나라도 더 주는 쪽에 의견을 낼 거 같습니다.
남동생이 연주한 생상 백조가 삼성폰
벨소리로 들어가있습니다. 동생이 연주한게
신기해서 온 가족이 핸드폰을 바꿨네요.
동생의 연주를 올려봅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FzemvSTLbg/?igsh=MXJucXB3cmZuNG9n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