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에 대하여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 글

by 김정은



취미 발레를 배워봤을 때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잘하지 못 해도 음악과 함께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또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백조의 호수(유니버설 발레단) 공연도 했는데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발레리나들이 안 보이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연주하면 발레리나가

급히 동작을 해야 해서 미리 들어보라고 주신 녹음테이프를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박자를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이라도 잘못 연주하면 발레리나 분이

불편하실까 봐 연습하신 녹음테이프 음원과 똑같이 연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중에 공연 끝난 후 발레단에서 음악을 많이 연구하고 연주해 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받아서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린스키 발레단, 로열 발레단, 파리 발레단등 유명한 발레단들이 많은데요.

유명한 발레리나들 영상도 조금 올릴게요.

시간 되실 때 조금씩, 즐겁게 보셨으면 해서 자료

많이 올려봅니다.


(나중에 음악, 미술과 발레에 관련하여 조금조금씩 소개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오늘은 발레의 역사와 중요한 작품들을 올려봅니다)


자하로바

https://youtube.com/shorts/Ib5mIi7easU?si=ayQkHOFLnHTeMiWj



Natalia Opsipova

https://youtube.com/shorts/KZAH7oox9LE?si=j9kkoqJT3B-6ylFt



Alina Somova


https://youtu.be/yI4hN1AiyRQ?si=Nf-uhUms6SvMyvZc









발레는 유럽에서 발생한 무용 예술

본래 유럽의 궁정과 귀족사회 사교무용이었습니다.


최초의 발레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으며

16세기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왕궁으로 전파했습니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프랑스 절대주의 왕권을

확립하고 황금기를 이끈 왕입니다.

그는 '태양왕'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발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춤을 좋아했습니다.

루이 14세는 13살 되던 해 '카산드라의 발레'에서

무용수로 데뷔했습니다. 그는 스타 발레리노였습니다. 그는 발레를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17세기에 루이 14세는 왕실음악무용아카데미를 설립했습니다.


오늘날의 발레를 고안하고 전파한 것은 러시아였습니다.

17세기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는 프랑스의 유명한 무용가들을 불러들여 발레를 본격적인 무대예술로 발전시켰으며, 이들이 활동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은 세계 발레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발레는 학습과 더불어 몸에 익숙해질 정도의 수준을 터득하기 위해 수년의 훈련이 필요하며, 능숙함을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요구됩니다.


3대 발레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지젤

'백조의 호수 '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발레 작품.


1877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초연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음악 중 가장 먼저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지크프리트 왕자와 오데트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동화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모티브는 정확히 알기는 힘들지만 독일의 요한 칼 아우구스트 무사우스(Johann Karl August Musaus)가 수집한 독일 민담 The Stolen Veil 또는 러시아의 민담 《백색 오리》라는 설이 있습니다.


1877년 모스크바에서 처음 공연 혹평을 받았습니다. 실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는데

"음악이 발레에 안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의외로 발레단이나 발레 무용수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생전에 발레 음악으로 인기를 얻지도 못했으며, 백조의 호수 첫 공연 실패 후 음악원 동료들 앞에서 크게 낙담했다고 합니다.

시대를 앞서 간 그의 발레곡들은 이바노프(백조의 호수)와 디아길레프(호두까기 인형) 같은 안무가들이 공연을 성공시키기 전까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의상과 안무가 문제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 3막의 궁정의 화려함이 메인이었으며, 2, 4막 백조들과 호수의 비중이 낮았기 때문에 줄거리가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백조 의상은 화려하기만 할 뿐 지금처럼 '깃털과 날개'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독일 전설에서 유래된 남자 주인공 이름 지크프리트

러시아인들은 매우 생소해하여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는 등 강한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차이코프스키가 사망한 지 2년 후인 18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공동 안무가 레프 이바노프의 노력이 컸습니다. 프티파는 주역 무용수들의 마임과 회전 테크닉으로 음악과 춤을 조화시켰으며, 이바노프는 짝짓기 철을 맞은 백조들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오랫동안 관찰한 뒤 오데트와 백조소녀들의 안무를 완성했습니다. 새롭게 개선된 안무에 의해 이 작품은 비로소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https://m.youtube.com/watch?v=9rJoB7y6Ncs&pp=ygUJc3dhbiBsYWtl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이 작품도 차이콥스키의 작품으로 이 작품은 호평도, 혹평도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동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마법에 걸린 공주가 100년간

잠들었고 왕자가 입을 맞추고 잠이 깨어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내용입니다. 음악이 아름다워서 디즈니 음악으로도 사용합니다.


https://youtu.be/-USyXGCqukU? si=5 ZLJobMxmVGhR0 ks



지젤


https://youtu.be/3 TLSrI_hXEw? si=3 qy7 Na_ZEm5 aK7 L0



지젤’의 최초 탄생과정을 알면 그 내용이 더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테오필 고티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극본을 썼는데, 정작 ‘지젤’을 만든 동기는 발레리나 그리시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연모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모든 것을 구상했지만, 그리시는 이미 ‘지젤’의 공동 안무가 쥘 페로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결국 고티에는 그리시가 아니라 그리시의 언니와 인생을 함께 했습니다. ‘지젤’에는 고티에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골처녀 지젤과 귀족청년 알브레히트, 그리고 지젤을 흠모하는 힐라리온이 주인공입니다. 지젤은 알브레히트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유령이 됩니다. 죽어서 알브레히트를 지키는 내용입니다.


'라 바야데르'


발레 작품 중 블록버스터입니다.

캐스팅 인원도 많고 까다로운 작품입니다. 지젤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이국적이고 화려한 무대로 인기가 많습니다.


줄거리는 인도에서 용맹한 장군 솔로르와 사원의 무희 니키야는 신분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을 했습니다. 니키야를 짝사랑했던 승려는 질투해 솔로를 죽이려 합니다. 한편 라자왕은 솔로르를 자신의 딸 감자티와 결혼시키려 하며 니키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솔로르와 감자티는 결혼을 하게 되고

니키아는 감자티와 라자왕이 보낸 꽃바구니 안의 독사에 물려 죽게 됩니다.


자신 때문에 니키아가 죽은 것을 슬퍼한 솔로르는 아편을 피우고 환각상태에서 니키아를 만납니다.


https://m.youtube.com/watch?v=Qsw8fD4z5SI&pp=ygULbGEgYmF5YWRlcmU%3D



호두까기 인형


https://youtu.be/xtLoaMfinbU? si=rRDu2 wJu3 ex_-4Zg



크리스마스 때마다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입니다.

꽃의 왈츠, 사탕요정의 춤등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합니다.

영화음악, cf 음악으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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