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19세기 중엽을 살다간 러시아의 대문호입니다. 그는 러시아 작가중 가장 그리스도적인 작가로도 불립니다. 그의 그리스도교적인 영성, 천재적인 재능, 드라마틱한 인생 체험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빈민병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시벨리아 유배지 생활도 겪고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악취와 오물에 둘러싸이기도 했고 수인들의 분노를 경험한 그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이중성, 선과 악, 구원등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추악함과 그것을 넘어선 구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통해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의 단테로도 불립니다. 그는 실제로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20대말에 반체제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배형에 처해집니다. 그는 10년 가까이 시베리아 유배지에서 보냈습니다.그 감옥은 러시아 전역에서 몰려온 온갖 범죄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살인범, 강간범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죄를 뉘위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습니다.
(pixabay)
도스토옙스키는 24시간 그들과 함께있는 것들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깊이있게 그 사람들을 관찰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지옥은 어디를 가지 않아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고통, 그 상황이 지옥이다라고 보았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감옥에서 나와서 쓴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죄수들은 하나같이 자기 본능, 욕구에만 충실했습니다. 그들은 양심, 성찰 , 배려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서로를 증오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도스토예프스키를 미워했습니다. 귀족이니 더 미워보이고 죽이려고도 했다합니다.
도스토옙스키도 그들이 미웠습니다. 그들의 악취, 욕설, 범죄에 대한 추억이 그를 계속 괴롭혔습니다.그러다 그는 깨닫습니다. 내가 이들을 계속 증오한다면 , 인간에 대한 혐오를 벗어날 수 없다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뒤로 평생 증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이 화두를 작품에 넣었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줄거리는 패륜적인 아버지 표도르와 네 아들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장남 드미트리가 아버지의 유산문제를 담판지으려다 아버지가 점찍어둔 여자에게 반하게 되었고 냉철하고 이성적인 둘째 아들은 형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착한 아들이었던 셋째 알렉세이 아버지와 형들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강한 형제들은 공공연하게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이 작품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극적인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선과 악,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대서사시입니다.
이 소설은 재밌고 그 당시에 인기도 많았습니다.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해서인지 이 소설에는 유난히 지옥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버지 카라마조프는 '지옥에 갈고리가 있나? 나를 어떻게 데려가지?'라고 말하고 이반은 알료샤는 성모님의 지옥 방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이반은 꿈에서 악마와 대면하기도 합니다.
늙은 수도자 조시마 장로는 지옥과 지옥불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야기들 중 양파 한 뿌리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어느 못된 할머니 죽었는데 착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악마들이 할머니를 지옥불에 던져넣었습니다. 그때 할머니의 수호천사가 할머니가 했던 단 하나의 선행을 기억해냅니다. "하나님 저 할머니는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에게 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에게 양파 하나를 들고가서 그녀에게 그 양파를 붙잡고 나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나온다면 천국으로 가지만 양파가 끊어지게 되면 지옥에 남을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는 양파를 들고가서 양파를 내밀었습니다. 할머니는 양파를 붙잡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할머니의 발을 붙잡았고 할머니는 " 이거 놔 , 이건 내 양파라고" 하는 순간 양파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불바다로 떨어졌고 천사는 눈물을 흘리며 떠나갑니다.
단테는 지옥에 욕망의 노예, 탐옥에 빠진 사람들, 배신한 사람들 여러가지 죄목을 갖고 지옥을 갔다고 표현이 되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선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했습니다.
양파 한 뿌리 때문에 천국을 갈 수 있다하면 천국의 다른 사람들이 불공평할 수 있지만 이것은 신의 은총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는 할머니의 행동에 따라 결정됩니다. 양파가 물질이라면 양파만으로는 할머니를 빼내기 어렵습니다. 양파는 신의 은총이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 했기 때문에 나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이기적이었고 교만했습니다.
할머니는 나만 구원받을 것이고 너희들과는 달라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던 것은 할머니의 단절된 마음과 행동, 증오가 느껴집니다.
선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기주의, 교만 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개인과 전체, 혼자있는 것이 좋다라는 것을 말하려던 게 아닙니다.
매달려있던 사람들, 할머니도 다 잘못했습니다.
가족 이기주의,집단 이기주의, 국가이기주의도 있습니다. 타집단에 대한 단절, 집단 따돌림, 도둑들의 의리등 하나에 대한 대안이 아니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지옥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사랑으로 봤습니다.
공상적 사랑은 멋진 느낌입니다. 저는 인류를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멋지지만 멈출 수 있는 사랑이고 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그는 실천적 사랑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에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나에게 폐를 끼치는 이웃까지도 사랑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실천적 사랑은 견뎌내는 것이라고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학문이기도 하며 희생하는 것이고 결국 나도 회복하는 길입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악도 있지만 신의 모습도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어야합니다. 나와 너가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사랑한다.
그는 존재한다면 무조건 사랑하라고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죽어있는 집이 된다고 합니다.
전쟁, 고통, 질병, 절망, 증오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되기도 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사랑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 와닿기도 합니다.
말러는 교향곡 2번 부활을 작곡할 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빠져있었습니다.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의 장례행진에서 엄숙한 슬픔, 침울한 번민을 고통에 찬 비명을 담듯
비극적 선율들이 나옵니다. 2악장에서 4악장까지 말러는 음악적 순례기를 써나갑니다.
3악장에 불길한 동요가 있듯 불협화음이 이어집니다. 4악장에서는 독창곡을 통해 원초적 빛, 구윈을 가져다주고 영생을 약속하는 신의 은총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5악장 피날레의 합창에서 모든 인류가 힘을 합쳐 부르는 목소리 속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도 떠오르게 됩니다.
'믿으라, 내 마음아, 믿으라. 네가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네 것, 네가 원했던 것, 그것은 네 것, 네가 사랑하던 것, 네가 투쟁한 것. 네 것이다'
말러는 교향곡 2번 우리의 영적의 삶, 사랑의 삶을 살것을 이야기합니다.
https://m.youtube.com/watch?v=4MPuoOj5TIw&pp=ygUHbWFobGVyMg%3D%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