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욕망에 대해서
'워너비'라는 단어는 영어의 표현 'Want to be'를 발음하기 쉽게 연음으로 처리한 단어로, 1980년대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가 엄청난 인기를 얻던 시절, 그 마돈나의 패션과 외향을 따라 하는 사람들을 Madonna wannabe로 부르면서 하나의 단어로써 사용되게 되었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현재에는 닮고 싶은 사람이나 특정 우상들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워너비가 있겠지만, 가장 인간의 근원에 가까이 있는 워너비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에서 이 작품은 시작되었다. 결국, 떠올린 것은 번식에 대한 욕구와 그에 따른 성욕이 전 인류를 통틀어서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욕망이 어떻게 표출됐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워너비01, 02 작품을 그리게 되었다.
남성의 큰 성기와 여성의 큰 가슴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숭배됐다. 남근의 형상을 띈 수많은 조형물과 큰 가슴을 가진 석상이나 토우들은 다산을 통한 부족의 번성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고 해석되곤 한다. 이는 현대에 들어서는 적용이 안될 것 같지만 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여러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섹스 심벌들의 모습이나, 성적인 주제를 다룬 코미디에 활용되는 내용 중의 대부분이 남성의 성기 혹은 여성의 가슴인 것을 보면 말이다.
여전히 이렇게 성적 코드들에 집착하면서도 이런 미디어들을 생산해내는 선진국들은 저출산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재밌는 현상이다. 오히려 번식욕에서 시작된 성적 집착들이 표현의 자유를 얻어 다양하게 발산이 가능해지면서 그로 인해 번식욕과 성욕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일까? 번식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면서, 성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는 모습은 마치 번식을 위한 섹스와 쾌락을 위한 섹스가 완전히 구분된 사회의 모습을 그린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가 떠오른다.
이렇게 성과 연관된 신체 부위들에 대한 집착은 과연 언제까지 인류를 따라다닐까? 본능적 욕망에서 인간은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