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청년들은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립하지 못한 채, 부모의 보호와 사회적 구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자립의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지고, 안정적인 직장은 점점 줄어들며,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N포 세대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사회는 이를 뒷받침할 여건을 좀처럼 제공하지 않는다. 현실은 자립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자립의 어려움은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 때문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봉, 복지 수준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그런 대기업을 향한 취업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가 되었다. 대학 교육은 수천만 원의 빚이 되어 돌아왔고, 집값은 평생을 바쳐도 닿기 어려운 지점으로 올라섰다. 청년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들은 포기하거나, 혹은 자신을 탓하며 고립되거나, 무기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전략을 세운다. 그 사이 청년들은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정체되고 지연된 상태로 남겨진다.
사회는 이런 청년들을 냉담하게 바라본다. 청년들을 향한 시선은 종종 '의지가 약하다.', '노력하지 않는다.',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는 식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그 시선은 개개인의 책임을 부각할 뿐, 그들을 그런 상태로 내몬 구조적 환경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과거의 방식으로 성장한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누렸던 기회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으며, 청년들에게는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런 시선 속에서 청년들은 유예된 어른으로 머물게 된다.
'안락한 유모차' 작품은 2016년도 작품이다. 유모차에 탄 인물은 성장하지 못하고, 자립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의 모습을 상징한다. 유모차는 보호와 이동의 수단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자립을 미루는 안락함의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인물은 자신의 무기력에 고통스러워하지만, 여전히 유모차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을 그리고 나서부터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이 형상은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 작품을 통해 청년 세대를 단순히 비판하거나 연민하고자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앞에 놓인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유모차에 탄 어른의 모습은 자립하지 못한 상태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의 보편적인 초상이다. 이 작품이 특정 개인이나 세대를 지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와 그 안에서 반복되는 무력감을 함께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립이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제는 그 책임의 일부가 사회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