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당당함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

by 채정완
어떤 당당함 2017_Arcylic on canvas_162.2X112.jpg 어떤 당당함 Strange confident, Arcylic on canvas, 162.2X112.1, 2017

법의 공정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규범이자, 우리가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원칙은 근대 문명사회의 핵심이며, 이 원칙이 무너질 때 사회는 신뢰를 잃고 분열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은 항상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법은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된다.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저지른 중대한 범죄가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되는 현실은 드문 일이 아니다. 엄중해야 할 법의 심판은 그들에게만 관대하고, 그들이 저지른 행위는 빠르게 망각된다. 이는 곧 법 자체의 신뢰를 훼손하며, 정의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게 만든다. 이러한 법의 편향성은 단지 개인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권력 구조 전반의 비틀어진 단면을 보여준다.


'어떤 당당함' 작품은 이러한 모순과 불균형을 시각적으로 압축해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 중앙에는 양손이 수갑에 채워진 채 등장한다. 손등에는 피가 묻어 있어 그가 분명한 가해자임을 암시하지만, 그의 손은 놀랍게도 V자를 그리며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반성도, 죄의식도 찾아볼 수 없는 제스처. 오히려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 하나의 연출처럼 받아들이며, 여전히 당당하고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수갑은 단지 형식일 뿐, 그들에게 진정한 속박이나 제약은 되지 않는다. 이 아이러니는 법이 누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바로 이 당당함의 실체를 겨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오만이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권력의 민낯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불공정함을 직시하고, 그에 맞서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합의와 감시의 눈을 견고히 해야 한다. 법은 권력자에게조차 예외 없이 작동할 때만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며, 정의는 선언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천으로 증명된다. 이 작업은 그 출발점에 서서, 관객과 함께 분노하고, 되묻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사회의 정의는, 정말 정의의 편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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