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고 다 어른인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만 19세가 되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그 순간부터 '어른'이라 구분된다. 그러나 사회가 규정한 이 명칭은 개인의 내면적 성숙이나 공동체적 책임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단순한 나이 기준은 오히려 '어른다움'이라는 본질적 자질을 흐리게 만든다. 이 작업은 바로 그 간극, 즉 제도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시각적 문제 제기다.
사회에서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끌고,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며, 결정과 책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이들은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말과 행동에 영향력이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사회적 자격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위치에 있는 이들, 부모, 공무원, 교육자, 심지어 정책 결정자들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책임한 언행, 감정적 대응, 자기중심적 판단은 그들이 여전히 성숙하지 않은 채 어른 흉내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과 대조적으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쉽게 경시된다. 그들의 발언은 '미숙함'이라는 이름 아래 축소되고, 그들의 감정과 판단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이들이 보여주는 윤리의식, 공감 능력, 사회 비판적 시선은 오히려 이른바 '어른들'보다 더 깊고 분명할 때가 있다. 나이만으로 성숙과 미성숙을 나누는 사회적 관습은 오히려 실질적인 성숙을 왜곡한다.
이 작품에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남성의 상반신, 그리고 그 아래에는 기저귀를 찬 하반신의 기괴한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손은 무언가 중요한 토론을 나누는 듯 복잡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아래의 육체는 여전히 자기 스스로 배변 행위도 제어하지 못하는 유아기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 시각적 모순은 어른이라는 사회적 외피 안에 감춰진 유아적 실체를 드러내는 장치다. 겉으로는 권위와 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조절과 책임 의식이 모자란 존재들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이 작업은 그와 같은 이중적 구조를 비판하며, 어른이라는 말이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닌, 태도와 책임의 문제임을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른은 단지 나이를 먹은 사람이 아니라, 성숙한 내면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해하고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외적인 권위보다 내적인 책임감, 허울뿐인 명분보다 실제적인 실천을 통해 진정한 어른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기대해야 할 진짜 어른이다.